광개토왕(廣開土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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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광개토왕(廣開土王)/담덕(談德)
【생몰년】 374(소수림왕 4)∼412(광개토왕 22)
【시 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시 대】 삼국 시대
【성 격】 왕

   374(소수림왕 4)∼412(광개토왕 22).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고구려 제19대 왕으로 391년에서 412년까지 재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사후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재위기간 동안 거란(契丹)을 정벌하여 그 유목부락 600∼700영(營)을 격파하였으며, 연해방면(沿海方面)의 숙신(肅愼)을 정벌하였다. 또 동부여(東扶餘)를 공략하여 두만강(豆滿江) 하류의 혼춘(琿春)을 정복하였으며, 후연(後燕)의 침략을 강력히 응징하여 요동(遼東)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백제를 정벌하고 신라를 구원하기도 하였다. 특히 한강유역(漢江流域)의 백제정벌에 있어서는 즉위 초부터 석현성(石峴城) · 관미성(關彌城)을 함락하고, 수곡성(水谷城)과 패수(浿水)에서 백제를 격퇴하여 그 접경지대에 7성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다. 이어 396년에는 한강을 넘어 진격하여 58성 700촌락을 공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아신왕(阿莘王)으로부터 많은 전리품과 영원히 노객(奴客)이 되겠다는 맹세를 받고 백제왕의 동생과 대신들을 인질로 잡아왔다. 그러나 백제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세력만회를 위해 왜(倭)를 내세워 399년에 고구려와 연결되어 있는 신라를 공격하고, 404년에는 대방고지(帶方故地)를 침공하여 왔지만, 광개토왕은 이들을 신라에서 몰아내고 가야지역까지 추격하여 궤멸시켰으며, 나아가 407년에는 백제를 공격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하고 6성을 쳐부수어 백제를 응징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광개토왕은 남으로 한강선(漢江線), 서로는 요하이동(遼河以東), 북으로는 송화강(松花江), 동북으로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였다.
능과 능비는 지금도 중국 길림성 집안현(輯安縣)에 있고 능에 대해서는 장군총설(將軍塚說)과 태왕릉설(太王陵說)이 있으며, 능비에는 그의 생애와 업적이 적혀 있다. 특히 그 중 신묘년조 기사는 동양 3국 학계의 논쟁대상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廣開土王陵碑文, 廣開土王의 雄略(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好太王碑硏究(王健群, 吉林人民出版社, 1984), 漢江史(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