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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토란 말은 한 토지의 기후 · 기상 · 지형 · 지질 · 경관들을 모아서 가리키는 총칭으로 즉 자연을 뜻한다. 자연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태초에서부터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사람은 그 속에서 생(生)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을 생물학적인 대상으로 삼기도 하거니와, 국가란 집단조직을 형성하고 또 문화를 영위하고 생활을 꾸려 나아가기도 한다.
자연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화육(化育)의 힘으로 생물을 성장시키는가 하면 자연 속에 생을 누리는 존재는 모두 생명의 유한성(有限性)이 있어 흥망성쇠가 교체되고 있다. 무한(無限)이 없으므로 신진대사와 새 생명으로의 변화가 반복되어 종(種)은 지속성(持續性)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복귀를 한다. 사람이 생각하고 문화 예술을 창조하고 웃고 우는 것도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사는 동안에 있어서의 한 현상이다.
사람은 숙명적으로 자연을 떠날 수는 없다.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제한을 받게 되고 자연에 의지하고 자연을 이해하고 슬기롭게 자연을 활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생활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문화는 자연적 여건 위에 창조되고 성장해 왔다.
학자에 따라 인류생활과 자연을 관련시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형을 분류해 왔다.
일반적으로 몬순(Monsoon) · 목장 · 사막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이것을 농경지대 · 유목지대 · 사막지대라고 할 수 있다.
몬순이란 계절풍을 말한다. 동남아에서 인도와 동북아에 걸쳐 수도작지대(水稻作地帶)에는 계절적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에 따라 온기와 비를 동반해서 벼농사 짓기에 알맞는 기후를 형성하게 된다. 계절풍은 축축한 습기를 지니고 있어서 식물에 흡족한 수분을 주어 성장을 돕게 된다. 벼는 곡물 재배에 있어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여러 국가의 인구가 세계인구의 2/3를 차지고 있는데, 이들은 몬순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풍토적 여건을 잘 이용하는 지혜가 있어 많은 인구가 먹고 살 수가 있었다. 몬순지대의 공통성은 도작농경(稻作農耕)이란 점이고 도작문화권(稻作文化圈)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은 초원이 위주여서 유목을 했고 밭이 많으니 보리와 밀의 주산지이다. 어디를 가나 초록일색이어서 초식동물이 살 수가 있으니 목축이 번성하였으며 벼농경과는 다른 생활양식이 형성되었다. 밀로 만든 빵이 주식이고 버터를 즐겨 먹는다. 대서양의 난류가 북상하기 때문에 위도가 위인데도 비교적 춥지 않아서 곡식이 잘 자란다.
사막은 북아프리카 · 고비 · 몽고 · 아라비아 · 미국 등에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모래만 있고 토양이 없으니 식물이 자랄 수가 없으며 우량이 적어 건조하고 더워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우물이 없고 어쩌다 물이 있는 오아시스는 행상(隊商)들의 생명의 원천이다. 바람이 불면 사진(沙塵)을 일으키고 사막이 한 계절에 수 ㎞씩 넓어지는 일도 있다.
사막에서는 사람이 생활을 할 수가 없으나 인간은 때로는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을 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며칠동안 사막에서 견디어 내는 인고(忍苦)를 겪는 일도 있다. 사막의 일부는 모래가 토양화되어서 초지(草地)를 이루어 유목을 하는 몽고의 일부와 같은 곳도 있다.
서울은 동경 126도 59분 북위 37도 33분에 위치하여 한반도의 중앙부에 있으며 한강의 하류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말까지는 4대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근대도시로 발전하면서 인구가 팽창함에 따라 도시지역이 넓어져서 강북에서 강남으로 뻗어 이제는 한강을 가운데 두고 강북 · 강남이 거의 반씩 차지하고 있다.
서울은 풍수적으로 이상적인 명당 자리이다. 북에서 북한산 줄기가 뻗어 내려서 내맥(來脈)을 이루고 경복궁 뒷산인 북악(北岳)에서 좌우로 뻗어 낙산(駱山)을 청룡(靑龍)으로 하고, 인왕산에서 사직단(社稷壇)에 이르는 산줄기를 내백호(內白虎)로 하고 다시 안산(鞍山)에서 만리동과 효창공원에 이르는 구릉을 외백호(外白虎)로 했으며, 남산이 안산(案山)이고 복판에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장풍득수(藏風得水)를 이루고 있다. 이만한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5백년 도읍지로 충분했던 것이다.
기온은 연평균 10.9도C로 사람이 살기에 알맞는 기온이며, 바다에서 불과 30km 떨어진 한강하류의 비옥한 농경지가 있어 도시의 인구를 부양할 식량생산이 가능했고 또 수량(水量)이 풍부해서 농경하기에 알맞는 곳이다.
가장 추운 겨울의 평균기온이 -4.9도C(최저 -23도C까지 내려간 일이 있음), 가장 더운 8월의 평균기온은 25도C(최고온은 38도C)이며, 겨울에도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으로 추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4계절이 분명하며 봄에는 한강에 안개끼는 일이 자주 있고 가을에는 쾌적한 날씨가 계속된다. 근교에서 소채(蔬菜)가 생산되며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도 풍부하고 한강상류에서 시신(柴薪)이 공급되었다. 강이 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교통이 발달하여 유통에 편했다. 이와 같은 자연적 조건이 도시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어 도읍으로서의 여건을 갖춘 곳이다.
자연적인 조건은 민속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즉 산악인가 평야인가 해변인가에 따라 생활현상으로서의 민속상이 달라진다. 또 기후의 한난(寒暖) · 풍우(風雨) · 건습(乾褶8 등도 생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민속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수렵에 능하고 산채(山菜)로 찬을 삼으며 목재가 흔해서 가옥건축에도 토석(土石)보다는 목재를 많이 쓰게 된다.
수렵은 원시시대부터 가축이 사육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인류의 생업의 하나였다. 산에는 짐승이 많았고 사람이 평야에 내려와서 농경을 시작하게 되니까 들짐승들이 모두 산으로 들어가 이제는 산에서만 살게 되어 산악인들은 수렵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채집생활에서 전원의 재배생활로 옮겨졌으나 산에는 자생하는 산채들이 계절에 따라 얼마든지 있으니 산촌사람들은 산채를 식별할 줄 알고 산채를 뜯어 찬으로 삼았다. 지금도 서울의 동쪽에 위치한 시장에 가보면 강원도지방에서 산채가 많이 들어오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산촌에서의 농경은 벼농사 보다는 밭농사 위주이다. 산이 많고 논은 적으며 산골짜기에 밭을 일구어 곡식을 재배하고 있다. 따라서 잡곡인 강냉이 · 콩 · 감자 · 보리 등이 주산물이며 한 때는 화전(火田)도 성했었다. 곡종이 다르니 생산방법과 파종 · 수확의 시기가 다르고 작업과정도 다를 수가 있고 조리법도 달라서 노동과 식생활에 있어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촌에서는 또 다른 민속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어촌은 생활의 터전이 육지가 아니라 바다이기 때문에 늘 위험이 뒤따랐고 항해술 · 잠수술(潛水術) · 고기잡이의 기술이 있어야 하며, 또 기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은 해양민족의 지혜이다. 자연적 여건이 해양과 관계가 있으므로 생존하기 위한 지혜로 육지와는 다른 일들이 요청되었다.
산촌에서는 신(神)이 수직적으로 출현해서 산 위에 내려 오지만, 해양에서는 바다 저 멀리에서 수평적으로 출현한다. 유토피아가 내륙의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 저 쪽 멀리 또는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바 용궁이란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의 신은 용왕님이고 용왕님의 거처는 바다 깊은 곳 용궁이라는 생각은 해양민족의 사고이다. 고대소설‘별주부전’은 해양적인 발상에 의한 것이다.
해변의 어촌이라는 자연적인 여건이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을 결정짓게 된다. 또 양식과 조리에 있어서도 상당한 특징을 드러내게 된다. 사람의 수명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는 듯 어촌 사람들이 장수자가 많다. 바다바람에 실려오는 맑은 공기가 있고, 늘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가 있었으니 장수의 비결이 해초 · 어류 · 바다공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평야에서는 약 2,000여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어 왔다. 남방에서 중국대륙을 경유해서 벼가 들어온 후로 자연풍토로 보아 가장 알맞는 생업으로 채택되어 우리는 벼농사를 위주로 해서 살아왔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사고는 도미경작(稻米耕作)으로 먹고 사는 과정에서 전승되어 왔다.
벼농사는 계절감각이 예민하다. 1년에 한번 모 심고 수확을 거두는 것이니 한 번 실수하면 굶어 죽게 된다. 따라서 적기(適期)에 씨나락을 담그고 모판을 만들고 못자리를 하고 모를 심고 김을 매고 거두어 들여야 한다. 따라서 세시풍속은 농경생활 위주로 편성되었다.
한반도의 기후와 기온은 벼농사에 알맞다. 우량도 적당해서 전답에 곡식을 가꾸기에 적합하다. 다만 겨울은 추워서 동남아에서 처럼 다모작(多毛作)이 아니라 단작(單作)이 흠이다. 그러나 단작만으로 충분히 먹고 살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생존해 온 것이다.
우리의 가옥이 농토 가까운 곳에 터전을 잡고 토석으로 집을 짓는 것도 농토와 우량(雨量)과 관계된다. 농토와 집의 거리가 가까워야 농사짓기에 능률적이고 시간이 절약 되었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토석으로 지을 수가 없다.
농경민족은 성격이 유순하다. 채취생활(採取生活)에서 농경재배생활로 옮겨 식료가 풍부해졌으므로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또 계절을 맞추어서 일을 하고 살았으니 서둘지 않고 의젓하게 유유자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산촌인이나 사막민족처럼 드세지 않고 착하고 순리대로 하늘을 의지하고 사는 지혜가 있게 되었다.
한반도는 벼농사에 알맞는 곳이고 한강유역은 도작(稻作) 위주이다. 서울은 평야와 강과 산을 고루 갖춘 곳이어서 생활의 장소로서는 알맞는 곳이고,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서 행정의 중심지로서도 여건을 고루 갖추었다. 육로가 사통팔달해서 남과 북으로 뻗어 있으며 한강이 반도를 가로 지르면서 산악 내륙의 산물을 운반해 주는 수로역할을 했고 강과 산이 방위(防衛)에 적합해서 국도(國都)로서 알맞는 곳이다. 서울은 민속문화에 있어 지리적 자연적인 여건 때문에 중용성(中庸性)을 띠게 되었다. 남북이 교류할 때도 서울을 통과해야 했으며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국과 수시로 연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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