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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속이 농경문화를 주축으로 해서 애니미즘과 샤마니즘에 의한 신앙성을 기층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나 생활의 근대화로 하여 농촌인구가 빠져나가 도시에 집중하게 되고 교육의 보급과 과학의 발달로 애니미즘이나 샤마니즘에 집착하는 층이 얇아져서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종래 민속이 많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농 · 산촌에서는 집터를 잡을 때 풍수설에 입각해서 내맥(來脈)을 보고 향(向)을 보고 양지(陽地)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도시에서는 도로를 향해서 집을 지어야 하고 아파트가 군립하게 되니 재래의 관습에만 얽매일 수 없게 되었다.
농가에서는 가신(家神) 중에서 조왕신(鋤王神)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신으로 군림했었다. 부뚜막에 걸터앉아서는 아니되며 부뚜막을 아무 때나 함부로 수리하지 않고 조왕신을 잘 위해야만 하루 세번 아궁이에 불을 때고 식록(食祿)이 건전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명절 · 초하루 · 보름 또는 가족의 생일에는 부뚜막에 정화수를 떠다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아파트에는 부뚜막이 없고 가스를 사용하게 되어 조왕신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즉 생활환경의 변화가 조황신을 퇴화 소멸시킨 것이다.
그러나 산신(産神)인 경우에는 도시의 아파트에서도 아이의 출산은 있으니 산신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모두 병원에 가서 출산하기 때문에 산신을 의지하느니 보다 의사를 의지하고 고맙게 여기고 있어 산신의식(産神意識)은 퇴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농경생활에 형성되었던 민속문화가 도시생활로 전이(轉移)하는 과정에서 소멸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도시생활의 특수성에 의해서 새로운 민속이 탄생되는 경우도 있다. 교통안전부적(交通安全符籍)이 그 예이다. 농촌에서는 차량이 적어 차사고가 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도시에 있어서는 차사고가 빈번해서 자동차가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화재 · 한재(旱災)와 호환(虎患)이 큰 위협이었으나 이러한 일은 이제는 인간의 지혜로 다 해결되었다. 반면에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 때문에 인간이 피해를 입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초등학교가 길 건너에 있고 길을 건너 가려면 차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어린 아이를 보호받으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에서 교통안전부적이 어린이 옷 속에 감추어지는 일이 있게 되었다. 내 자식을 보호하려는 어머니의 성심에서 교통안전부적은 존재의 근거를 찾게 되었다. 즉 도시문명의 부작용으로 새로운 수요에 의해서 전에는 없던 신앙형태가 형성된 것이다.
초가에서 기와집으로 발전할 때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아파트로 변하여 보일러를 때고 침대에서 자게 되고 인스탄트식품을 즐기게 되고 TV를 보면서 생활하게 되니 민속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또 작업장이 논 · 밭 · 산이 아니고 생산공장 · 사무실 · 시장 등으로 다양하게 변하고 생활기구도 양식도 달라지게 되니까 사람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일게 되어 민속문화는 새로운 변이양상을 띠게 되었다. 농 · 산촌에서처럼 이웃 · 마을간의 협동 상호부조는 사라지고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가 아니라 문 단속을 잘 해야 하며 이웃과 서로 경계하는 일도 있어 이제는 인정과 윤리를 위주로는 살 수 없게 되어 도시민속은 새로운 몸부림을 하게 되었다.
도시화 한다고 해서 민속문화가 모두 사라지거나 의식에서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에서 예를 들면 도시에는 수많은 예식장이 기업화되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식장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입장 퇴장하고 면사포를 쓰고 드레스를 입고, 주례사가 있어 진행과정을 보면 모두 서구화한 느낌이다. 그러나 예식에 앞서 신부집에서 함이 전달되며 혼례가 끝난 직후에 예식장에 마련되어 있는 폐백실에서 폐백례를 올리고 있다. 이 함의 전달과 폐백은 전례의 혼의(婚儀)를 준수한 것이어서 변한 부분과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생활에 있어 시대의 변화에 융통성있게 적응하면서 문제의 핵심에 있어서는 고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민속의 힘이고 민족의 공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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