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풍속-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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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궁중에서 큰절하는 법도가 남자의 경우 공적으로는 ‘읍(揖)’이 있고 보통의 경우는 ‘배(拜)’가 있으며 여자의 경우는 ‘반절’과 ‘왼절’과 ‘큰절’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궁중에서 그 절하는 법도와 방법이 특이하다.
즉 4배가 최고인 바 그 대상은 왕과 왕비, 그 윗분으로는 왕대비 · 대왕대비 등이 된다. 후궁은 사친(私親)이라 하더라도 아랫사람(외부에서 들어오는 안손님 및 궁녀들)들은 재배(再拜)를 한다.
『한중록(閑中錄)』에 궁중에서 보내온 문안 편지를 받는 자세를

「선비(先쯼)께서 복색(服色)을 고치시고 붉은 상에 홍보를 깔고 중궁전(中宮殿) 글월은 사배하여 받잡고 선희궁(宣禧宮) 글월은 재배하여 받으시고……[註]」

라는 대목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4배하는 방법이다. 위의 예는 세자빈으로 간택된 처녀의 어머니가 궁에서 내린―말하자면 사돈댁의 편지를 받는 예절이니 북향 4배, 정식으로 네번 꼬박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대신이 왕께 가례, 승후, 혹은 문안을 드리는데 네번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법은 없다. 한번만 엎드렸다가 앉은 채로 고개만 다시 들어 네 번을 채우는 것이다. 소위 ‘고두(叩頭)’라는 것이다. 고 김상궁과 박상궁의 대화에서 ‘희정당(熙政堂)에서 민대감이 상감마마(순종)께 승후(承候) 아뢰는 것을 뵈니, 앉은 채로 네 번 하더라’고 하였다.
또 그 방향이 정면이 아니라 얼토당토 않는 다른 곳을 보고 하는 소위 곡배[曲拜, 협배(挾拜)]라는 사실이다. 즉 신하가 왕을 뵈올 때 남면(南面)하고 계신 왕을 향하여 정면으로 북향을 하지 못하고 ㄱ자로 꺽어서 서향이나 동향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전에 좌우로 늘어서서 곡배를 드리는 모습은 마치 신하들끼리 서로 맞절을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이는 『내훈(內訓)』에도

「어른과 자리를 같이 할 때는 반드시 모꺾어 앉으라」

고 되어 있고, 또 『한중록』에도 어린 옹주가 철이 없어 올케가 되는 세자빈과 나란히 앉았다고 대왕대비가 분개하는 장면이 있다.

「화유[和柔, 옹주(翁主)]가 좁은 방에서 내 어깨를 갈왔던지 “빈궁(嬪宮)이 어찌 지중(至重)하관대 제가 감히 그리하리” 분하여 하오시니……」

그리하여 이 법도는 김상궁이나 박상궁이 윤비 생전에 택시에 동승하는 때면 모로 꺾는 대신 택시 밑바닥에 낮은 의자를 놓고 앉았다고 한다. 이 곡배는 그 대상이 산 사람이 아니고 혼백(魂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원전다례(璿源殿茶禮) 때 윤비는 고랑마루(분합 밖의 좁은 마루)에 서서 북향이 아닌 서향 4배를 올렸다는 것인 바, 물론 이때는 네번 꼬박꼬박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는 형식이다. 필자도 직접 목도한 일이 있다.
1968년 2월 윤비 대상(大祥) 낙선재 서온돌(윤비 침실) 지게 앞 대청에 동향으로 제상(祭床)을 차려 놓고 6간 대청에 늘어선 종친들의 배례(拜禮)는 신위와는 ㄱ자로 북향 4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