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나타난 경어체 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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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모가 왕에게 ; [왕모의 신분은 전 세자빈(世子嬪)]
정조와 그 모빈[母嬪 (홍씨)]과의 대화 중에

「예사 사람도 어미가 아들을 위하여 착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려든 생각하여 보시오. 내 모년화변(某年禍變)을 지내고, 한 아들을 의지하여 국가의 중임(重任) 밖, 내 사정을 겸하여 마누라 진선진미(盡善盡美) 하시라저 마음이 어떠하겠압나니이까.
모 그때 일이아 소년적 일이니 거슬어 무엇하오리이까」

위 왕모(王母)의 말 중 ‘마누라’라는 호칭은‘마마’의 버금가는 존칭으로 원칙적으로는 한자의 ‘저하(邸下)’에 해당하며, 동궁내외(東宮內外)에게 바쳐진다. 그러나 친모자(親母子) 사이, 친근감에서 ‘마마’라 안하고 한 단(段) 낮춰 ‘마누라’라 부른 것이다. 반대로 왕은 전 세자빈인 어머니에게 ‘마누라’대신 ‘마마’를 쓰고 있다.

「갑자년의 원자(元子)의 나이 15세니 족히 위(位)를 전(傳)할 것이니 처음 마음을 이루어 마마를 모시고 화성(華城)으로 가고, (중략) 이 일이 나는 영묘하교(英廟下敎)를 받자와 행(行)치 못하는 것이 비록 지원(至)하나 또한 의리요, (중략) 우리 모자 살았다가 자손의 효도로 이 영화와 효양을 받으면 어떠하겠압나니이까」

위의 대화에서 왕이 모빈께 ‘나’라 한 것이 주목된다. 만일 어머니가 대비라면 마땅히 ‘소인’[사석(私席)이므로]이 된다. 그밖의 어미(語尾)의 경어체를 보면

「내가 저 하나를 못휘울까 보오니이까〈왕이 왕모에게〉
나려오오면 우히(上이) 그립삽고〈세자빈이 왕에게〉
저런 원통한 일이 있삽나니이까〈왕모가 왕에게〉
어찌하여 엄교(嚴敎)가 이같자오시니이까〈세자빈이 대비에게〉
소인(小人)에게 세손보도(世孫輔導)하기를 부탁하여 겨신데...〈시누이(옹주)가 오라버니댁(세자빈)에게」

등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극존칭의 버금가는 경어법으로 ‘하오체’가 있다. 그런데 궁중의 ‘하오체’는 민간어와 달리 극존체와 혼용해서 쓰고 있다. 다음은 역시 정조와 그 어머니 혜빈 홍씨의 대화이다.

「이 무슨 일이며, 이 어쩐 뜻이오니이까. 생각을 하여 보오, 마누라가 독로(篤老)하였삽나니이까, 병환이 계시오니이까. <중략>30이 되도록 아들이 없는 것도 초민(焦悶)하거든 시방은 남(홍국영을 가르킴)의 손에 휘이어 스스로 아들 못 낳기로 자판(自判)하시니 이 무슨 일이요.」

또 이런 ‘허우체’도 있다.

「세손(世孫)이 국사(國事)를 아옵는가, 노소론(老少論)을 아옵는가, 아니 답답하온가 〈왕이 대신(大臣)에게〉」

영조가 영상(領相) 홍인한(洪麟漢)에게 한 말인데 ‘하오체’지만 옵(오)를 삽입시킨 것은 궁중어의 체질적인 품격에서 온다.

「저 어인 말이온고, 오늘 취(醉)하온가 말을 살펴 하지 시방 죽은 사람을 갖다 이 귀한 몸을 비겨 말을 하옵는가 〈세자빈이 손아래 시누이 되는 옹주에게〉」

위의 경우 세자빈이 옹주에게 쓰는 말은 하오체도 하게체도 아닌 ‘하지’하는 반말체로 이는 시집식구를 상전시하는 민간과 다르다. 즉 왕통(王統)을 이어 받을 세자의 빈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녀라 해도 세자빈과는 어깨를 같이 앉을(나란히 동열에 앉음을 의미) 수는 없는 것이 궁중법도이다.
허우체는 나인 상호간의 공적 대화 때, 또 나인이 지밀(至密)생각시(소녀나인)에게 대한 경대에도 쓰인다. 생각시는 아무리 어려도 위에서 부리시는 사람이라 나이 먹은 상궁들도 ‘지밀 큰각시, 작은각시’하고 ‘허우체’를 쓴다.
또 객체(客體)에 대한 간접 존대가 있다. 이는 궁중어에 한정됨이 없이 광복 전까지 서울 전통사회에서 보통 사용되던 언어예절이다. 즉 두 사람의 대화에 있어서 제 3자에 대한 간접적 존대법이다.
다음은 왕이 며느리인 세자빈에게 자신의 왕비에 대한 얘기를 하는 대목이다. 참고로 왕비란 영조계비 정순왕후 김씨로 며느리 보다 10세 연하의 여인이다.

「내 內殿께도 더 보기를 ‘이전과 달리마오소서’하였으니 내 말을 들으실 것이니 네 조금도 혐의하여 내전(內殿)을 어찌 알지 말라」

이러한 풍속은 광복 전까지만 해도 하인이나 어린이들에게 전갈을 시킬 때 흔히 있었던 것이다. ‘배비장전’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방자야, 네 예방(禮房)나리께 가서 ‘아가새[아간(俄間)] 문안 아옵고자 하옵니다’하고 ‘물색지지(物色之地) 이 곳 와서 수심하시니 우연 일이오니까’하고……」

오늘날도 어른들이 이런 친절이 있다면 국민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에게

「얘, 너 담임이 오시래」

하는 경어의 전도(轉倒)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