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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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란 직접 대놓고 부르는 대칭도 되고 3인칭으로 일컫는 대명사도 된다.
궁중어의 경우 호칭은 보통 2인칭으로는 존칭과 대치된다. 즉 왕에 대하여 ‘상감마마’니‘대전마마’니 ‘주상전하’니 하지 않고 보통은 그냥‘마마’, 공적으로는 전하라 부른다는 뜻이다. TV사극에서 새파란 궁녀가 대놓고‘대왕대비마마’ ‘중전마마’등 존칭 위에 호칭을 얹어 부르는 것은 옛 궁중법도로 치면 당돌하고 무엄하기 그지 없다. 대궐 안의 생활체제는 각 왕족마다 독립세대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그 전각의 주인은 당연히 ‘마마’이기 때문이다. 절대군주에 대한 외경심은 존칭마저도 거부할 때가 있다. 예컨대 왕이 출입할 때 시위를 맡은 내관이 그 앞에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시위―듭시오!’하고 외친다. TV사극에서와 같이 낭낭한 음성으로 ‘상감마마, 듭시오!’하고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연극일 따름이다.
‘마마’란 중국어의 ‘마마()’의 차용이지만 한국 궁중어의 있어서 최고 존칭호이다. 그런데 이‘마마’에 님자가 하나 덧붙여짐으로 오히려 격하되어 ‘상궁’의 존칭이 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논리 이전의 관습이니 어찌하는 수 없다. 한편 이 ‘마마님’은 상궁의 존칭 외에 민간에서는 대가집 소실들의 칭호에도 쓰인다. 이 의미를 추궁해 보건대 일맥상통하는 마디가 있다. 왜냐하면 궁녀들이란 어차피 넓은 의미의 내명부(內命婦) 즉 왕의 부실(副室)감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고등관 대우의 상궁들에게만 ‘마마님’이 바쳐진다는 것은 체통상의 배려인 것 같다. 왜냐하면 왕의 사랑을 얻는 것을 승은(承恩)이라 하는 바, 승은하는 궁녀는 입궁 30년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상궁이 아니고 앳되고 야릿야릿한 젊은 궁녀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왕족의 3인칭의 호칭은 아래와 같다.

「왕 : 상감마마, 대전(大殿)마마
왕비 : 중전(中殿)마마, 곤전(坤殿)마마, 내전[內殿, 왕이 자신의 비(妃)를 3인칭으로 일컬을 때]
대비(왕의 모친) : 자전(慈殿), 웃전(그 위의 분이 안 계실 때), 왕모라도 그 신분이 ‘세자빈’(정조 모친 혜빈 홍씨의 경우)일 때나 또는 후궁으로서 ‘빈(嬪)’일 때(순조모친 영빈박씨의 경우)는 ‘자궁(慈宮)’이라 함.」

왕대비 및 대왕대비 두 분이 다 생존 중일 때는 대왕대비전을 ‘웃전’, 왕대비전(그 아래 대비가 계실 때)은 대개 그 거처하는 집의 명칭을 호칭으로 하고 그 아래 ‘마마’를 붙인다. 예컨대‘자경전(慈慶殿) 마마’‘수정전(修政殿) 마마’와 같다.
이렇듯이 호칭의 상징성이란 그 거처하는 집의 이름으로 사람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한편 호칭만이 아니라 존칭에도 해당한다. ‘폐하(陛下)’ ‘전하(殿下)’ ‘저하(邸下)’등 왕족의 존칭과 신민들의 언어에서 많이 쓰는‘합하(閤下)’ ‘좌하(座下)’ ‘안하(案下)’ ‘족하(足下)’등은 위에 아무 호칭없이 사람 자체를 지칭해서 쓰이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의 원의를 구명해 볼 필요가 있다. ‘폐하’의 ‘폐(陛)’는 왕좌[탑(榻), 즉 왕이 앉는 걸상)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그러므로‘폐하’란 그 계단 아래께 즉 감히 그 주체 앞까지는 미칠 수 없고 ‘그 계단 아래에서 뫼시고 있는 하인(내시)’이라는 뜻이다. 이는 전하(殿下), 저하(邸下), 좌하(座下)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좌는 보료나 방석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소문이나 편지 같은 글이면 몰라도 이는 그 아래, 그 주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음을 볼 때, 이 역시 예절성의 하나로 상징성의 대표라 할 것이다. 합하 이하 역시 궁 밖의 용어로 존칭이라 하더라도 풍속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원래 상풍하속(上風下俗)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 다 같은 경대법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족하(足下)’는 가장 아래급에 속하는 바 ‘발 아래 쯤’또는 ‘거기 서 있는 하인에게’ 라는 뜻이다. 그는 방석조차 못쓰는 신분(경제적으로)의 2인칭임을 나타낸다.
호칭의 상징성의 또 한가지 경향은 왕을 가리키는‘위’(우히)라는 대명사이다. 위는 한자로‘상(上)’으로 표기되어 『인현왕후전』에도 ‘상(上)이 가라사대’등 많이 쓰이고 있지만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위’가 아니라‘자상(自上)’이라는 이상한 호칭이다. 원래 ‘자상’이란 ‘위로부터’‘위에서’의 뜻인 바, 18세기 영 · 정조 때만 하더라도 아예‘왕’의 별칭으로 쓰고 있다.


「자상(自上)으로 겨오셔 세손을 다리시고…
자상(自上)으로 자애(慈愛)하셔
자상(自上)으로 양반스런 부녀(婦女)라 칭찬하오셔
자상(自上)으로 가까이 부르오셔…
일물(一物)은 자상(自上)으로 생각하신 일이요」

위의 다섯 개의 인용 중 첫번째만 ‘께오셔’가 붙고 나머지는 ‘자상으로’만이지만‘자상으로 겨오셔’와 같은 뜻이다. 즉‘자상께서’는 곧 ‘위에서’의 뜻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경우‘자상’의 ‘자(自)’의 뜻은 ‘으로’(으로부터, ∼께서)와 중복이 되는 셈인데, 이 역시 관습화된 궁중어이다. 이러한 어법은 궁중어의 특수성을 놓고 생각해 볼 때, 어렵고 두려운 절대적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의 간접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자상과 대(對)가 되는 것은 자하(自下)이다.

「자하(自下)로 데려가기 황공하오나…
자소(自少)로 자소(慈少)를 입삼지 못하여…」

앞의 두 열은‘자(自)’의 뜻이 살아있다. ‘자하(自下)’는 ‘아래사람으로서, 아래사람의 의견으로서’, 자소(自少)는 ‘어려서부터’의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