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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어의 예절성의 또 하나의 요소가 표현의 완곡성(婉曲性)이다. 이것은 앞에서 논급한 ‘비단정성(非斷定性)’즉, ‘일자다의어(一字多義語)’대목과 상통하지만 여기서는 낱말 중심으로 별도로 거론하기로 한다.
독한 말, 모진 말을 피하고 언어에도 덕(德)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봉건시대의 특히 여성교육의 골자였다. 『내훈(內訓)』에 ‘모딘 말을 하지 말며(不道惡語)’라 있는 바와 같다. 그리하여 예절성이 생명인 궁중어에서는 극단적인 표현을 몹시 기피하고 있다. 예컨대 ‘별로 좋지 않은 자리’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영우원[永祐園(사도세자의 첫번 묘소)]이 십분(十分) 무흠한 곳이 아닌 줄 알으시고 정조(正祖)가」
수원(水原)으로 옮겼다는 대목인데 이와 같은 표현법은 단어 하나 골라 쓰는 데도 나타나 있다.
「◇ 반하다
a.국영(國營)이(洪國營) 임진(壬辰) 가을에 등과(登科)하니 본디 아해제부터 반한 것이요.
b.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만일 다른 데 반하거나 뉘 꾀욤을 듣삽고…」
a의 ‘반하다’는 ‘버렸다’, b는 ‘유혹에 빠지다’의 뜻이다.
「◇ 상(常)없다.
민간어에서는 ‘상(常)스럽다’라고 하지만 궁중용어에서는 ‘상(常)’이 문자 그대로 ‘떳떳常’의 구실을 해서 ‘常이 없음’이 문제다. 즉 무식하다 버릇없다의 뜻.」
궁중어의 예절성은 한편 품위와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 그 진가는 단어 보다도 운용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망발을 하십니까→이 무슨 과거(過擧)오시나니이까
저녁 때 가겠읍니다→아마 저녁 때 뵈옵겠나이다
저렇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저리 하오셔 어찌하올까 보오니이까
화장실에 갔습니다→급한데 갔음으로 아뢰오! 〈공적 용어〉」
말을 느릿느릿 의젓하게 함은 옛 양반도(兩班道)의 하나다. 궁중어는 서둘지 않고 모나지 않고 ‘∼리이까’같은 유장(悠長)한 어미(語尾)의 분위기에 그 진가가 있다.
분초(分秒)를 읽고 사는 현대인에게 그 경어체를 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왕 조차도 신하에게 ‘∼한가’할 것을 ‘하온가’하는 품위있는 자세, 극단을 피하는 표현의 완곡성(婉曲性), 이런 언어의 예절성은 요즈음 날로 거칠어져 가는 언어풍토에 서서 한번쯤은 되돌아 봄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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