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들의 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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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방(井字房)의 직숙(直宿)은 경복궁 시절까지만 해도 외곽 방의 수효대로 매일밤 8명의 노상궁들이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순종 때에 내려와서 국권의 상실과 때를 같이 하여 8명이 4명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8명의 직숙 궁녀는 왕의 유모[봉보부인(奉保夫人)] 및 보모상궁을 선두로 수백 궁녀 중의 총수인 큰방상궁[제조상궁(提調尙宮)]과 아릿고상궁(부제조상궁)과 60, 70대의 지밀(至密) 원로상궁들이었다. 이들 중 왕의 유모는 거의 매일이며 나머지 7명은 큰방상궁과 아릿고상궁부터 상하번으로 갈라지는 격일제 근무였다. 그런데 침실의 상직은 말이 자는 것이지 막중한 임무의 성격상 한밤중에라도 ‘여봐라’하면 ‘녜에―’하는 자세로 눈만 감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규제로서 우선 침실 직숙궁녀들에게는 아예 작은 포대기 외에 이부자리라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방은 물론 차지 않다 하더라도 60, 70대 노인들에게 요가 없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보다도 딱딱한 목침에 뒤통수에 붙은 조진머리의 쪽이 닿아 도무지 아파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궁녀들의 침실 직숙은 왕과 왕비가 평안히 침수(寢睡)하시도록 호위하라는 뜻이지 잠을 자라는 뜻이 아님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