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보다 무서운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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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말의 사랑스런 거리의 신사 정수동(鄭壽銅)은 상민들에게 있어서 양반은 호랑이같이 두려운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양반은 서민의 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신분제도가 못박혀진 것은 소위 불가부거(不可赴擧)라 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신분을 명시한 태종대부터이다. 이후 조선말까지 500년 가까운 동안 명예와 염치에 산 양반도(兩班道)는 정립되었고, 반면 자신들이 양반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서민들의 양반에 대한 증오는 특히 양반의 무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임진왜란 이후부터였다.
더욱이 조선후기 척족(戚族)들의 세도정치가 자행되었을 때 상민들에 대한 착취와 노략질은 가지가지의 민원(民怨)을 사서 양반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으며 국력은 피폐하여 망국의 원인에도 그 영향이 다분히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가운데서 서민사회에 돌아다니는 속담이나, 그들의 예술인 탈춤의 대사에 양반을 향한 증오심은 원색적으로 풍자적으로 표출되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풍자도 있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많다.
길을 가다가도 양반의 행차를 만나면 피제(除)소리와 동시에 몸을 피해야 됨은 물론, 설사 피차 똑같이 걸어가는 입장이라도 우선 양반에게는 길을 피해 줘야 한다. 만일 채 못피했거나 생각없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가는 주릿대를 맞을 판이다. 60대 상민이라 해도 10대의 소년양반 앞에서 자기를 ‘소인’이라 낮추고 ‘도련님’ ‘서방님’ ‘영감님’이라 관직에 상응하는 칭호로서 깎듯한 경어로 대해야 하고 담뱃대를 물고 가다가도 얼른 빼서 뒤에 감추고 구부리고 가야 된다.
상민의 산이라도 양반이 탐을 내서 묘를 쓰면 이쪽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우스운 이야기로 충청도 양반이 그 언저리에서 해먹을 것이 없으면 하인으로 하여금 형구를 갖춰 들리고 경상도까지 원정을 가서 약탈질을 하는 예도 있었다 한다. 그 횡포상은 박지원(朴趾源)이 쓴 한문소설『양반전』에 풍자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그리하여 ‘양반의 새끼는 범의 새끼’‘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기호양반지족(騎虎兩班之族)’이니 ‘서울 양반이 무서워서 과천서부터 긴다’는 등의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또 이들의 위세를 업고 그 밑의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위세를 부리는 것도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 ‘대신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 ‘대신댁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혜당댁(惠堂宅) 당나귀는 약과만 잡수신다’는 속담도 이를 뒷받침 해준다. 혜당이란 선혜청(宣惠廳)의 당상관(堂上官)이고, 선혜청은 대동미포전(大同米布錢) 등 국가의 재물 출납을 담당한 관청으로 그 곳의 장(長)은 마음만 있으면 치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아마도 이 속담의 배경은 대한제국 말 왕비의 친정인 민씨일족이 집권하던 시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