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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는 고려 광종 때 당제(唐制)에 의거하여 처음 시작되었는데 당시 경대부(卿大夫)는 특별임용을 하고 그 밖에 한하여 시험으로써 채용을 했었다. 그러나 이후 과거를 거쳐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승진하여 고관(高官)이 되었으므로 중세 이후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의 대부분은 과거 출신자로 되기에 이르렀다. 또 이때까지만 해도 과거에 응시할 자격에 하등의 제한이 없었다. 그런데 15세기 초 태종 때에 와서 혈통에 의한 신분제가 확립됨으로써 변화가 생겼다. 즉 그때까지 양반의 문벌을 얻지 못한 집 자제들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다.
시험이 시행되는 것은 매 3년마다이며 그 해를 식년(式年)이라 하는 바, 즉 자(子) · 오(午) · 묘(卯) · 유(酉)의 해로서 임시(臨時) 과거에 대하여 식년과(式年科)라고도 한다. 과거시험은 크게 세 부문이 있는데 그 기능별로 문과(文科) · 무과(武科) · 잡과(雜科)로 나누기도 하고 권위별로 대과(大科) · 소과(小科) · 잡과(雜科)로 나누어 지기도 한다. 같은 대과라도 문과와 무과는 격이 다르며 고전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과거에 장원급제’한 수재로 등장하는 것은 대개 문과의 수석을 의미한다. 소과(小科)는 생원(生員) · 진사(進士)의 칭호를 주는 일종의 선비 자격시험이다.
시험의 방식은 식년과(式年科) 전년 가을에 일종의 준비시험인 초시(初試)를 시행하고, 다시 그 해 봄에 두번째 시험 복시(覆試)를 보여서 무과와 잡과는 합격자를 결정한다. 문과는 지방에서 치룬 초시와 중앙의 복시가 있었고, 합격자들은 다시 어전(御前)에서 전시(殿試)를 치루었다. 그 장소는 현재 비원(秘苑)이라 일컬어지는 창덕궁(昌德宮) 춘당지(春塘池) 곁 영화당(映花堂) 앞 넓은 잔디밭이 바로 그 자리이며 영화당의 중앙 약간 높이가 다른 마루방이 왕이 전좌(殿座)하였던 곳이다. 문과의 복시(覆試)는 각 지방에서 초시 합격자를 다시 모아 과거를 치른다는 뜻에서 회시(會試)라고도 한다. 따라서 문과는 초시 · 복시 · 전시[일명 회시(會試)]의 세번을 치루는 셈이다.
잡과(雜科)는 기술 및 기능직의 시험으로서 중인층(中人層)이 이에 응시한다. 그 분야는 자못 세분되어 다음과 같다.
「① 역과(譯科) : 통역관의 자격시험으로 한학(漢學), 몽고학(蒙古學), 화학(和學 일본어), 여진학(女眞學)이 있다.
② 의과(醫科)
③ 음양과(陰陽科) :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명과학(命課學)이 있다.
④ 율학(律學) : 법률학이다.」
이상의 시험들은 정기적으로 치루는 소위 식년과(式年科)로서 그 밖에 임시 과거도 적지 않다. 이는 국가의 경사가 있을 경우 이를 경축하는 뜻에서 치루는 경과(慶科)와 성균관 및 사학(四學)의 유생(儒生)들을 위한 알성과[謁聖科(일명 반제(泮製)]가 있다. 경과에는 또 그 경사의 등급에 따라 작은 데서부터 정시(庭試), 별시(別試), 증광(增廣)의 세 종류가 있다. 증광(增廣)이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왕의 즉위, 가례(嘉禮), 원자 탄생(元子 誕生), 왕을 비롯한 그 지친(至親)의 회갑 등 경사가 겹친다는 뜻에서 증광(增廣)이라 하며 반대로 가장 작은 경사의 경우가 정시(庭試)이다. 간략하게 하는 뜻으로 대궐 전정(殿庭)에서 실시하는 데서 그 이름이 생겼다.
이밖에도 제주도에서 토산물인 황감[黃柑(귤)]의 진상이 있을 때, 귀한 과일이라 하여 성균관 학생들에게 왕이 반사(頒賜)하고 치루는 ‘황감제(黃柑製)’와 성균관 학생들의 성적을 가려서 시취(試取)하는 ‘도기과(到記科)’가 있다. ‘도기(到記)’라는 것은 학생들이 끼니 때마다 한점씩 기록해 주는 성균관 식당의 개별적 장부로서 오늘날 대학의 출석부에 해당한다. 그들은 숙식을 하는 제도였으므로‘식점(食點)’의 수가 곧 출석일수를 기준으로 하는 학점이 된 셈이다.
과거의 응모자격은 양반의 자제로 17세 이상이어야 하며 서반[西班, 무반(武班)]은 문과를 볼 수 없었고, 양반의 서자는 물론 제외되었다.
과거의 합격 정원은 소과(小科)의 경우 각 지방에서 도합 1천명을 뽑고, 이들을 중앙에 모아다가 성균관에서 두번째로 실시하는 복시(覆試)에는 200명을 추렸다. 소과에 합격하면 생원(生員) · 진사(進士)의 칭호를 주었는데 원래는 동일자격이지만 진사란 ‘사류(士流)에 나아갔다(참례한다)’는 뜻이고, 생원은 ‘성균관의 연구원이 됐다’는 뜻인 바, 진사 쪽이 듣기 좋아서인지 후에 진사로 일원화되었다. 이에 따라 후에 ‘김생원, 이생원’같이 벼슬 안한 노인의 칭호가 되어 거기서 ‘샌님’이란 말까지 나왔다.
진사는 일종의 선비의 자격시험 같은 것이어서 이것으로 만족하고 상급 과거에 응하지 않는 이도 많았으며 더욱이 난세에는 일부러 벼슬에 참여치 않으려고 대과(大科)를 안보는 이가 많았다. 또 조선후기 척족정치(戚族政治) 하에 과거의 공정성이 상실된 때는 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문과(文科) 합격 정원은 33명이며 전시(殿試)에 갑과(甲科) 3명, 을과(乙科) 7명, 병과(丙科) 23명을 합격시켰다.
옛날 과거에도 부정행위와 자격 사기가 있었다. 신분의 사기, 호패(號牌) 및 대관(大官)의 소개장의 사기 등이 발각되면 자격 박탈, 심할 때는 유형(流刑) · 노예, 멀리 군역(軍役)으로 보내지는 중벌을 내렸다. 그런데 그 부정행위 중 커닝 뿐 아니라 대작(代作)이라든가 남의 답안을 넣은 봉투를 지우고 자기 이름을 써 넣는 얌체 행위도 열거되고 있으니 커닝이나 부정행위의 역사는 오래된 것 같다.
시험이 끝나면 각 시험관 합의 하에 채점을 하고 당락을 정하는 바, 성적은 갑 · 을 · 병의 3등급으로 구분하고 갑의 수위가 장원(壯元)인 셈이다.
『춘향전』에 이도령의 천재성을 나타낸 장면에
「당황모(唐黃毛) 무심필(無心筆)에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묻혀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先場)하니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 시관(試官)이 펼쳐보고 자자(字字)히 비점(批點)이요, 구구(句句)히 관주(貫珠)로다.[註]」
라 있어 쉽게도 만점(滿點)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문과의 시험과목이
초시(初試) : 사서오경(四書五經) · 시부(詩賦) · 대책(對策)
복시(覆試) : 사서오경(四書五經) · 시부(詩賦) · 대책(對策) · 사서삼경(四書三經) 강서(講書)
전시(殿試) : 대책(對策) · 잠송(箴頌) · 제조(制詔)
로 30대 장년도 낙방을 밥 먹듯 하는 풍토에 17, 18세 약관이 이토록 간단히 단순한 급제도 아니고 ‘장원’이라는 것은 소설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시험이 끝나면 각 시험관이 한자리에 앉아 합의하여 당일로 채점하여 합격자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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