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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공히 선민(選民)으로 자부하는 사대부사회 풍속의 특징은 예절성에 있다.
이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소승적(小乘的) 처신에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대승적(大乘的) 경륜으로 뻗어나간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철학에서 우선 자기 자신의 몸가짐의 구심점을 예도(禮道)에 두었기 때문이다. ‘예(禮)’란 일상생활에 있어서 사리(事理)에 맞는 규범을 뜻한다. ‘사리에 맞는다’는 데서 그 사리의 의미가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을 의미하므로 그 기준이 나라와 시대에 따라 일정하지가 않으므로 결국 풍속에 둘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의 역사는 영성(零星)한 문헌 기록을 통해서나마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의식에 관한 절차가 보이며 고려시대에는 한민족 고유의 예속에 불교색이 가미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고히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그 중심은 주자가례(朱子家禮)이다.
이 후 500년 동안 국가적 차원의 모든 의식절차에서부터 신민(臣民)들의 개별적 가례(家禮)에 이르기까지 그 운용의 구심점은 주자가례에 의거한 예에 있었음은 새삼스러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따라서 선민의식(選民意識)에서도 위로는 궁중을 본받고 아래로는 백성의 교화라는 자각에서 가장 모범적인 예의 실천자였던 것이다.
예의 으뜸은 효사상이다. ‘군자는 안에서 효자이고 나가서는 충신’이라는 효충일체의 고정관념은 효를 백행(百行)의 근원으로 삼아 사단(四端)도 오상(五常)도 모두 효에서 출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족 풍속의 가장 큰 특징은 예절성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본항에서는 서울 사대부사회의 예속 가운데 아침 저녁 일상성으로 수백년 동안 이어 내려온 미풍의 하나로 조석문안(朝夕問安)과 이의 문학적 표현인 문안편지에 조명을 비춰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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