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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비란 문자 그대로 가마 앞에서 전도(前導)해 온 비자(婢子)란 뜻으로, 즉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리고 온 몸종을 의미한다. 대개 옛날 웬만큼 사는 사대부 집안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유모와 몸종 하나를 딸려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유모는 없더라도 몸종은 대체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그쪽 가세가 몸종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면 문제 밖이지만 조선시대에 선비의 명분론이 아무리 ‘혼취(婚翠8에 재산을 가지고 운위하는 것은 오랑캐의 도[이적지도(夷狄之道)]’라 했더라도 대개 형편이 비슷한 집과 혼인을 했으므로 그쪽이 가난하면 이쪽도 몸종 같은 것을 거느릴 형편이 못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친정에서 데리고 온 솔래비자(率來婢子)는 대체로 그대로 상전의 시댁에 눌러 앉아 이쪽 노비문서에 오르고 새아씨의 몸종이 되어 고락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종이 많을 경우 시댁에서 딸려준 종들과 사이가 대개 원만치 못하여 얼마동안 데리고 있다가 친정으로 돌려 보내는 수도 있었고, 다른 비자(婢子)와 교체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교전비(轎前婢)가 상전의 시댁에서 같이 살 경우 마침 이쪽 남자 종과 짝을 지어 혼인[작부(作夫)]을 시키는 일도 있었고, 다른 집 노복과 맺어지는 경우, 그 배우자의 귀추는 쌍방 상전끼리 좋도록 해결하였다. 궁중에서 비빈(妃嬪)인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반드시 유모와 시비 2명이 딸려오는 것이 관례였다. 유모가 없으면 새로 중년여인을 얻어서라도 들여 보내야 된다.
이 경우 친정에서 동행해 온 유모와 몸종을 본방나인(本房內人)이라 했으며, 궁중에 원래부터 있던 나인들과는 격이 떨어진다고 본 까닭에 이들이 상궁이 되기는 극히 어려웠다. 정조 때 왕자(순조) 탄생의 경사로 모빈(母嬪) 혜경궁 홍씨가 시집올 때 데리고 들어온 몸종을 상궁으로 승격시켜 외람되다고 불안해 하면서도 선왕대 고사[故事(영조 때 인원왕후의 몸종)]가 있다 하여 안심하는 듯한 내용이 『한중록』에 나와 있다.[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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