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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님’은 한임(漢任) · 하임(下任) 등으로 표기하나, 어원이 어디서 왔는지 확실치 않다. 이능화(李能和)는 『여속고(女俗考)』에서 ‘항아(姮娥)님’의 와음(訛音)이 아닌가 보고 있지만, 나인의 존칭인 ‘항아님’을 유독 천민인 하님에게 부여했을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머리에 ‘짐을 인다’는 데서 ‘임대(任戴)’[註]의 뜻이라는 주장이 개연성이 있다.
하님은 옛 전통사회의 혼례에서 수모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부귀가(富貴家)일수록 그 수효가 많아 최고 12쌍, 즉 ‘24하님’이 폐백쟁반[수조반(脩棗盤)], 경대, 요강, 대야, 반짇고리 등 소품들을 다홍과 남색으로 된 겹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신부 가마 뒤에 두줄로 늘어서서 가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반대로 아주 빈한한 집의 딸이 시집갈 때도 한임은 수모를 겸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사람을 딸려 보내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신부의 짐을 나른다는 뜻보다 신부측에 딸린 수행원이 오라비나 삼촌말고는 달리 여자 수행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님이 신부를 따라 시집에 가면 그 쪽에서는 후히 한상 차려주고 정전(情錢)도 두둑하게 주는 것이다.
수모는 오늘날의 미용사 같은 소임을 하는데 이 역시 천민이다. 신부를 따라 가서 세수는 물론 화장과 옷시중을 하며, 유모도 교전비(轎前婢)도 없이 단신 시집온 가난한 신부의 경우 비록 모르는 남이라 하더라도 이같은 수모가 고맙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네 혼인이 아니고 거리가 멀 경우 하님과 수모는 하루밤쯤 자고 돌아간다. 가서 딸을 보내고 궁금해 하는 친정 식구들에게 시집의 간장종지 · 김치그릇서부터 그 집 식구들 얘기, 인심, 사는 정도, 음식 솜씨 등 미주알 고주알 보고를 해 준다. 어린 딸을 떠나 보낸 부모로서는 이 하님과 수모의 보고는 가장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정전(情錢)을 주고 잘 사는 집은 베 · 무명 등 옷감도 주면서 그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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