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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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는 궁비(宮婢)의 통칭이다. 무수리를 ‘수사(水賜)’라 쓰는 것은 차음(借音)으로 아무래도 몽고어계(蒙古語系)가 아닌가 한다.
궁중 각 처소에서 궁녀들이 못하는 막일을 담당하던 하녀들로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燒酒房)이나 빨래, 염색, 다듬이질 등 노동이 필요한 처소에서는 각각 5, 6명의 무수리를 쓰고 있었다. 이들도 옛날에는 궁중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여인도 있었던 듯, 『경국대전』에 시녀(궁녀 전체인 듯)와 마찬가지로 ‘수사’도 방출(放出)된 경우 이를 취하는 사람은 ‘장(杖) 1백으로 다스린다’는 대목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궁 밖에서 출입하는 이도 있어 궐내 출입증인 패(牌)를 허리띠에 차고 대궐문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원래가 천민들이라 머리를 방석같이 둥글게 틀어 머리 위에 얹고 충충한 곤색인 아청, 야청색 무명 치마 저고리를 입고 같은 천으로 넓다란 허리띠를 매는 것이 그들의 복장이었다. 아청이란 아청(鴉靑), 즉 갈가마귀색이란 뜻으로 남색 나는 곤색이 본색이지만 무명에 들였으니 우중충한 ‘반물’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