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정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 천민들의 의복제도에 있어서 비단 · 모시 등의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은 마찬가지지만 고종 31년(1894) 이후 소위 노비법이 폐지된 뒤에도 백정사회에는 웃옷이란 것이 없었다. 동저고리바람 이외 두루마기도, 또 겨울이라 해도 털모자도 쓰지 않는 풍토였다. ‘패랭이’또는 평량자(平凉子)라 하는 이상한 것을 썼고 그 끈도 헝겊이 아니고, 지승(한지를 꼬은 것)으로 달았다. 일제 때에 접어들면서 백정이란 직업이 단순히 푸줏간 주인으로 바뀐 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일족은 특수 집단사회를 이루어 역시 폐쇄적 전통에 약간의 근대적 변형은 있어도 6·25전쟁 전까지 그대로 답습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패랭이가 없어지고 대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게 된 이후 1930년대 벌써 그들의 독특한 머리형이 형성되어 있었다. 즉 어느 푸줏간 주인이든 간에 보통 상고머리(하이칼라머리)라 하는 머리형이 아니라 짧게 막 깎았는데, 그 길이가 앞 이마 위를 1㎝ 가량의 길이에서 뒤로 갈수록 짧아지는 모양이다. 6·25전쟁 직후에도 노인층에는 재래의 그런 머리 모습이 남아 있어 어느 예식장에서 손님 중에 그런 사람이 많아 눈에 띄어 가만히 살펴보니 현재는 돈도 많이 벌어 아들 딸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는 집이나 하객들의 머리 모양을 보고 신분을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정사회의 두발 풍속은 이것 뿐만 아니라 고종 때 단발령이 내리기 전에도 백정은 장가를 든 후에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머리를 틀어 올릴 수 없으며 긴 머리는 땋아서 방석같이 머리 위에 빙빙 돌려 올리는 형식을 취하였다. 자녀를 두어 상투를 틀 경우, 망건은 하지만 탕건은 안한다. 아니 못한다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상에도 상복 · 상립(喪笠) · 상장(喪杖)이 없고 베 두건만 쓴다. 또 백정사회의 여자들은 보통 여자들 같이 쪽을 머리 위에 둥글게 찌지 않고 머리를 땋아서 머슴 같이 틀어올려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