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德壽宮)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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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운궁 즉 지금의 덕수궁은 본래 정릉동 행궁(行宮)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광해군 3년(1611)에 경운궁(慶運宮)이라 개칭되었다.
이 정릉동 행궁은 그 전신이 성종의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저택이었는데, 선조 26년(1593) 10월 왕과 조정이 서북 피난지에서 환도하여 행궁으로 삼게 된 이래 궁궐의 구실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 광해군 3년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정식 궁명이 붙여지기까지는 그 소재가 정릉동인 까닭으로 정릉동 행궁(行宮)이라고 불리었다.
선조는 왕 26년 10월 이 곳을 행궁으로 사용한 이후 41년 2월 승하할 때까지 이 곳에서 정무를 총괄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은 광해군 역시 이 곳 행궁 서청(西廳)에서 즉위하여 7년(1615) 4월 창덕궁(昌德宮)으로 이거하기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이리하여 광해군 3년 10월에 정식으로 경운궁의 궁호가 호칭된 이후부터는 도성내 왕궁의 하나로 되었다.
인조는 계해반정(癸亥反正)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경운궁 별당인 즉조당(卽祚堂)에서 인목대비의 명을 받아 즉위하였는데 이 궁은 조선 후기에 명례궁(明禮宮)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고종은 일제강점 후 이 곳에서 여생을 보내었으며 그가 승하한 1919년 이후부터는 주로 빈객의 접대 장소로 이용되었다. 특히 석조전(石造殿)은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식 건물로서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의 회담장소로 사용된 일도 있고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