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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을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전통적 왕조사회에 있어서는 왕도의 결정과 아울러 가장 중요한 것은 새 궁궐을 영건(營建)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궁궐이 국왕이 거처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왕실과 국가의 존엄성을 상징하고 정령(政令)을 의결, 포고하는 최고의 정청(政廳)이라는 기능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풍수지리설이 성행한 고려조 이래로는 도읍지의 위치와 함께 왕궁기지(王宮基地)의 길흉 여부가 곧 왕조의 역년(歷年) 화복과 관계된다고 관념되었기 때문에 궁궐기지의 선정 및 영건 문제는 항상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궁이라는 명칭은 국왕이 즉위 전에 거처하던 잠저 (潛邸)나 상왕 · 태상왕이 거처하는 장소, 국왕의 생모 등 지친(至親)이 거주하다가 사후에는 그들을 향사(享祀)하는 묘사(廟祀)가 된 곳에도 궁명을 붙인 일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서 궁이라 불리운 곳은 그 수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우선 현존하는 국왕이 거처한 궁궐인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의 4개 궁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개요를 차례로 살펴보고, 기타 제궁(諸宮)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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