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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궁은 현존하고 있는 운현궁(雲峴宮)을 제외하고는 대개 다음과 같이 그 형태를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국왕이 즉위 전에 살던잠저(潛邸), 상왕 · 태상왕이 거처하던 궁실, 국왕의 생모 등 지친(至親)이 살다가 사후(死後)에는 그들을 향사(享祀)하기도 한 사묘(祀廟), 왕과 왕세자의 가례 때에 비(妃)를 맞아들이던 별궁, 후궁들이 살던 처소 등이다.
안동별궁(安洞別宮)은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비(妃)인 명성왕후를 맞아들이기 위해 신축한 건물로 현 풍문여중고 자리에 있었다.
창의궁(彰義宮)은 영조의 잠저 (潛邸)로 순화방(順化坊) 북부(현 종로구 통의동 35번지 및 그 부근)에 있었다. 숙종 45년(1719)에 경의군(敬義君)이 탄생한 곳으로 궁 안에 있는 장보각(藏譜閣)에는 영조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0년(1786)에 죽은 왕세자(문효세자)의 묘인 문희묘(文禧廟)가 본궁 안에 있었는데, 순종 융희 2년(1908) 신위를 매안(埋安)하면서 폐지되었다. 궁전의 일부분은 최근까지 있었으며, 궁내에 있던 백송은 서울의 명목(名木)으로 손꼽혔다.
어의궁(於義宮)은 사직동에 있던 궁으로 일명 상어의궁(上於義宮)이라고 불렸으며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곳이다.
용흥궁(龍興宮)은 동부 숭교방, 현 종로구 효제동에 있던 효종의 잠저 로 하어의궁(下於義宮)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인조 16년(1638)에 인조의 제2왕비인 장렬왕후가 가례(嘉禮)를 거행한 것을 위시하여 현종 · 숙종 · 영조 · 순조대에 걸쳐 여러 왕후의 가례가 모두 이 곳에서 거행되기도 하였다.
이현궁(梨峴宮)은 동부 연화방, 현 종로구 인의동 48번지에 있던 광해군의 잠저 였다. 이 부근은 속칭 배고개(梨峴)라고 불려 이현궁(梨峴宮) 또는 이현본궁(梨峴本宮)이라고 하였다.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그의 저택으로 사용하던 곳이었으므로 궁이란 명칭을 붙인 것은 혼동의 여지가 있다. 현재 종로구 운니동에 있는데, 궁의 일부는 덕성여자대학에, 또 다른 일부는 서울특별시에서 인수하여 복원한 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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