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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즉위 후에는 자주 경복궁에 이어(移御)하였고 궁전도 수리 증축하기 시작하였다. 세종 3년(1421) 5월에는 경회루 동쪽에 초가 2칸의 별실을 짓고 왕이 나가 거처하여 검소의 모범을 보였으며 세종 8년(1426)에는 집현전 문신들에게 명하여 궁내 각 문, 다리들의 이름을 정하게 하였다. 이 때 정해진 궁내의 각 문(門)과 교(橋) 명은 홍례문(弘禮門) · 광화문(光化門) · 일화문(日華門) · 월화문(月華門) · 건춘문(建春文) · 영추문(迎秋門) · 영제교(永濟橋) 등이다.
세종 11년(1429)에는 사정전(思政殿)과 경회루의 중수, 13년(1431)에는 광화문의 개구(改構), 14년(1432)에는 문소전(文昭殿)의 신건(新建), 15년(1433)에는 강녕전(康寧殿)의 개구와 신무문(神武門)의 신축, 16년(1434)에는 보루각(報漏閣)의 설치, 20년(1438)에는 흠경각(欽敬閣)의 조성과 선원전(璿源殿)의 이구(移構) 등이 있었다. 이렇게 세종은 많은 전각들을 개수, 조영(造營)하였고 궐내에 많은 문화이기(文化利器)들을 설치하므로서 경복궁은 왕궁으로 제 시설을 완비하게 되었다.
그 후 세조조에는 경복궁의 영조(營造)로서 세자궁(世子宮)을 들 수 있다. 세조가 세자궁을 영조하기로 한 것은 세조 7년(1461) 11월이었다. 이 때 수리도감(修理都監)을 별설(別設)하여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를 도제조(都提調), 호조판서 조석문(曺錫文) · 병조판서 만사우(萬師禹) · 행상호군(行上護軍) 김개(金漑) · 한성 윤(尹) 황효원(黃孝源)을 제조(提調)로 임명하고 영건을 준비하였으며 세조 8년(1462) 12월에 이루었다. 세자궁 외에는 세조 2년(1456) 3월, 후원에 새로운 정자를 건립하여 취로정(翠露亭)이라 명명하고 정자 앞에는 연못을 파서 연(鍊8을 길렀다.
성종조에서의 공사로는 경회루의 중수와 연은전(延恩殿)의 건립을 들 수 있다. 성종 4년(1473) 7월 경복궁의 제전(諸殿)을 수즙하기 위해 제조(提調) 낭청(郞廳)을 별설하였고 성종 5년(1474) 3월경에는 경회루 역사(役事)가 끝났다. 또 근정전 · 홍례문 · 광화문 등을 청와(靑瓦)로 복개하려 하였으나 사간(司諫)의 반대로 정지되었으며 1474년 8월에 다시 경회루 공사가 있었으나 이 공사는 구누우(舊樓宇)를 헐어 새로 짓는 공사인 듯하다. 성종 6년(1475) 실록에 보면
「경회루는 선왕 소창(所創)으로서 경비(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