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勤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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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경복궁근정전(景福宮勤政殿)
【분 류】 궁(전)
【지정사항】 국보 제223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이 건물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고 국왕의 즉위식이나 공식적인 대례(大禮)를 거행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근정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 중층(重層) 건물로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팔작지붕 으로 되었다. 기단(基壇)은 월대(月臺)라 하여 이중기단으로 되었는데 상하 월대 주변에는 장대석 (長臺石)을 두르고 하엽동자석 (荷葉童子石)과 팔각의 회란석(廻欄石)을 세우고 눕혀 난간을 만들고 각 난간의 엄지기둥 에는 각 방향에 따라 12지상(十二支像)의 일부와 사신(四神) 또는 서수상(瑞獸像)들을 조각하였다. 월대에 설치된 계단은 전후 중앙에 각 1개소, 좌우측에 각 2개소인데 전면(前面) 기단 중앙계단에는 답도(踏道)를 두어 그 사면(斜面) 운간(雲間)에는 봉황을 조각하였다. 답도의 좌우에는 작은 계석(階石)을 놓고 계석 의 우석(隅石)은 해치 (??)를 조각하고 계석 챌면에는 당초문 (唐草文)을 새겼다.
또한 상하 월대의 정면좌우 우석에는 45도각으로 연화대석(蓮花臺石)을 돌출시켜 두 마리의 해태가 머리를 중앙쪽으로 향하게 하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있다. 월대의 상부는 전석(?石)을 깔고 약간의 구배(勾配)를 두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건물의 기단은 상층(上層) 월대 위에 장대석 을 돌려 만들고 초석(礎石)을 놓아 건물기둥을 세웠다. 전(殿)의 평면은 밖으로 둘린 외진주(外陣柱)와 건물내의 내진주 (內陣柱)로 구성되고 전내(殿內) 네 귀에는 별도의 고주 (隅高柱)를 세워 가구(架構)하였다. 전내 상면(床面)은 방전(方塼)을 깔고 중앙칸 후편 내진주 사이에는 보좌 (寶座)를 마련하였는데 보좌는 복련(覆鍊8과 앙련(仰鍊8의 대좌 (臺座) 위에 조롱동자 모양의 초각동자(草刻童子)로 구획, 궁판 에 풍혈을 새기고 보상화문(寶相華文)을 조각하고 3단 궁판 위에는 목난간을 설치하였다. 난간 계자각 (鷄子脚) 사이의 하부에는 귀면(鬼面)을 2구씩 두고 그 상부는 풍혈을 조각하였다. 계자각 상부는 하엽(荷葉)과 원죽(圓竹)을 둘렀고 보좌에 오르는 계단은 전 · 후면과 좌우측에 각각 1개씩 있다. 보좌 위에는 어좌(御座)를 두었는데 뒤쪽에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가 그려진 병풍을 배경으로 설치하고 보개 (寶蓋)는 사각평면의 다출목(多出目) 결구(結構)로 귀접이천장을 마련하여 쌍룡(雙龍)과 보주 (寶珠)를 조각하여 넣었다.
축부(軸部)가 되는 외진주는 귀솟음 안쏠림기법 이 보이며 주간 (柱間) 장치로 솟을빗살의 분합문 교창 (交窓) 등으로 외계(外界)와 차단시켰고 기둥머리 에는 창방 (昌枋)과 평방 (平枋)을 끼우고 올려 외3출목, 내4출목의 다포 (多包)를 올려 하층 옥개 (屋蓋)를 받도록 하였다. 공포 (包)는 외부로 3종의 앙설 (仰舌)로 하고 맨 위의 첨차 는 수설식(垂舌式)이며 내부는 9중의 운궁 (雲宮)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층의 평주 (平柱)는 하층 퇴량 (退樑)과 내목도리(內目道里) 및 멍에창방 이 짜여진 부위에 올리고 공포는 하층의 공포양식과 동일하게 하였다.
내진주 는 독립된 고주(高柱)로 외진주와는 퇴량으로 연결되었고 퇴량과 뜬창방 사이의 상부 둘레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조각한 낙양각이 돌려져 있는데 뜬창방 위로는 머름 을 두고 운궁(雲宮)으로 장식하였다. 내진주 상부는 창방과 안초공 (按草), 주두 (柱頭)를 두고 상부에 소란반자 (小欄盤子)를 가설하였으며 천장 중앙부는 한단 높여 장방형의 틀을 돌리고 다출목(多出目)의 공포를 짜서 천개(天蓋)를 만들고 운문(雲文) 사이에 쌍룡과 여의주(如意珠)를 조각하였다.
이 건물은 특히 우주 를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사방으로 툇간 (退間)을 확대한 것이 특이하며 상 · 하층의 주간을 같게 하면서 알맞은 체감(遞減)을 갖도록 한 점, 외진 우주와 정 · 측면의 협간주(挾間柱) 사이를 같게 잡아 45도 각으로 추녀 가 걸리게 한 점들이 특기할 만하다.
지붕에 있어 용마루 · 내림마루 · 귀마루 는 모두 양성바르기를 하였고 귀마루에는 용두 (龍頭)와 창나무 (雜像)을 배열하고 사래 끝에는 토수 (吐首)를 끼우고 용마루 양단에는 취두 (鷲頭)를 올려 장식하였다.
월대 위에는 청동 향로를 중심축 좌우에 배치하고 정면 서측 계단 옆에는 무쇠드무를 놓아 화재 예방의 기능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본 건물은 창덕궁의 인정전을 모방한 것이나 인정전과는 달리 세부에는 섬약하여지고 인정전에서 느낄 수 있는 간고(簡古)하고 둔중(鈍重)한 감은 잃고 있지만 조선조 최후의 대작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