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광화문(光化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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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광화문은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후 103년 6·25전쟁에 소실된 후 18년 만인 1968년에 철근 콘크리트구조로 복원된 것이다.
원래의 광화문, 즉 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 정문은 일제 때 일본인들이 궁내에 소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란 침략의 아성을 지으면서 철거하려 하였으나 당시의 민족감정과 양심있는 일본인들의 반대 여론에 못 이겨 경복궁 동쪽 건춘문(建春門) 이북에 이건(移建)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궐문 석축은 탄흔 투성이가 되고 문루(門樓)는 소실되어 버렸다.
광화문 원래의 건축 양식을 보면 석축은 숭례문(崇禮門)과 같은 수법이지만 숭례문에서와 같이 홍예문(虹霓門)이 중앙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에 각각 한개씩 더 있어 중앙 홍예문은 군왕(君王)이 출입하도록 하고 좌우로는 제신(諸臣)들이 출입하도록 하였다.
문루의 짜임은 하층 주간(柱間)이 모두 개방되었고 상층은 판문(板門)을 달아 개폐하도록 하였다.
공포(包)는 다포계(多包系)로 외2출목, 내3출목이나 내부쪽 처리는 말기적 수법인 운궁(雲宮)을 사용하였고 내목도리(內目道里) 아래에는 장화반(長花盤)을 놓고 공포간에는 포벽(包壁)을 마련하였다.
가구(架構) 수법도 그 골격은 숭례문과 대동소이하나 하층 대량(大樑)이 고주(高柱)에서 합보 형식을 하고 대량(大樑)과 2층마루와의 사이에 공간을 두고 있는 것은 숭례문과 다르다.
상 · 하층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고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각 마루에는 취두(鷲頭) · 용두(龍頭) · 잡상(雜像)들이 배치되고 용마루 끝에는 용두를 달았다.
광화문을 건춘문 이북으로 일제시 이건할 때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