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전(殿)은 모든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뜻의 편전(便殿)으로 왕이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고 종친 대신들과 주연을 함께 하기도 하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문 · 무 과거를 보이기도 한 곳이다.
이 건물은 고종 4년(1867)에 건립되었다. 사정문(思政門)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나타나는데 동쪽에는 만춘전지(萬春殿址, 6·25전쟁 때 소실)가 있고 서쪽에는 천추전(千秋殿)이 자리잡고 있다. 사정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다포계(多包系) 양식의 팔작지붕이다. 건물은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 위에 원형주좌(圓形柱座)의 초석을 놓고 외진주(外陣柱)를 세웠으며 주간(柱間)은 토벽이 없는 사분합(四分閤)의 문비(門扉)와 광창(光窓)으로 되어 내부조명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기둥 윗몸에는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아 돌리고 그 위에 주두(柱頭)를 놓아 외2출목, 내3출목의 공포(慊包)를 결구(結構)시켜 대량(大樑)을 얹었다. 공포의 산미(山彌) 끝은 외부로는 이앙설(二仰舌), 일수설형(一垂舌形)이며 내부는 운궁(雲宮)으로 대량하중을 받게 하였고, 주두 아래 창방까지는 안초공(按草慊)을 내외부로 두어 공포를 보강시켜 주었다.
내부 대량 이상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상부 옥개(屋蓋) 구조를 은폐시켰고 처마는 겹처마로 원형 연목(椽木)에 각형(角形) 부연(附椽)을 달아 지붕을 받도록 하였다. 지붕의 각 마루는 양성바르기를 하고 용마루에는 취두(鷲頭), 귀마루에는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배열시켰다.
원래 이 건물지에는 세종 11년(1429)에 개구(改構)한 사정전이 있었으며 세종 14년(1432)에는 왕이 중궁전(中宮殿)의 노부(老婦)들에게 잔치를 베푼 일이 있었고 세조는 사직제(社稷祭)를 드린 뒤에 여기에서 음복연을 베풀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