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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경복궁자경전(景福宮慈慶殿)
【분 류】 궁(전)
【지정사항】 보물 제809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경복궁
자경전은 원래 자미당(紫薇堂)이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2년(1865) 4월에 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것이다.
그러나 고종 10년(1873) 12월에 화재가 일어나 고종 13년(1876)에 재차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또 같은 해에 화재가 있어 자경전과 함께 교태전(交泰殿) · 협경당(協慶堂) · 복안당(福安堂) · 순희당(純熙堂) · 연생전(延生殿) 등 830여 칸이 피재(被災)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25년(1888)에 정초(定礎)하고 그 해 5월에 중건된 것이다.
자경전은 경복궁의 연침(燕寢)으로 협경당(協慶堂) · 청연루(淸?樓)와 전면의 낭무일곽(廊黛一廓)으로 이루어졌고 전면 행각(行閣) 중앙에 정문인 만세문(萬歲門)이 있다. 자경전 후정에는 원장(垣墻)이 있고 십장생(十長生)의 굴뚝이 있으며 일부 행각이 헐린 동 · 북 · 서측 자리에는 전축장(塼築墻)이 돌려져 있는데 서측 전축장 외부에는 아름다운 화문장(花文墻)으로 꾸며져 있다.
자경전은 장대석(長臺石)이 기단 위에 방형(方形)의 높은 초석이 놓여지고 그 위에 방주(方柱)를 세워 축부(軸部)를 형성하였으며 공포(慊包)는 이익공(二翼工)으로 결구(結構)하고 겹처마를 걸어 지붕을 받도록 하였다. 전면 중앙 3칸은 전퇴(前退)를 개방하여 마루를 깔았고 기타 부분과 청연루 · 협경당의 외부는 모두 띠살문을 달아 차단하였다. 가구(架構) 수법은 방형주(方形柱)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익공(翼工)을 짰으며 퇴량(退樑)은 고주(高柱)에서 창방(昌枋) 아래로 겹쳐 짜이게 되었는데 보 아래에는 헛머리 양봉(樑奉)을 두고 보 위에는 주두 밑으로 짜이는 연화형(蓮花形) 운공부재(雲工部材)가 삽입되었다. 툇간(退間)은 연등천장이고 기타 방(房)들은 종이반자로 꾸몄다.
청연루는 전면 중앙에서 단칸으로 이간통(二間通)이 돌출된 상면(床面)이 있고 높직한 방형 석주(石柱)를 세워 그 위에 누 마루를 깔게 하였다. 전체의 외부 주간(柱間) 장치는 모두 띠살문 창호(窓戶)이며 전면 기둥에는 주련(柱聯)을 달아 운치를 돋구고 후면에는 단(段)을 둔 쪽마루를 두었다.
행각(行閣)은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삼량가(三樑架)로 홑처마인데 내정(內庭)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띠살문을 설치하고 외측벽은 두벌대의 장대석 위에 사괴석(四塊石)으로 하방장(下枋墻)을 쌓고 그 상부에는 광창(光窓)을 두어 건물내부가 밝도록 하였다.
행각 전면 중앙에는 정문 만세문이 행각 지붕높이와 같게 마련되고 문은 판문(板門)이며 3단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주변의 원장(垣墻)은 하부가 사괴석, 상부는 전돌(塼乭)이며 기와를 입혔다. 또 북쪽에는 일각문(一角門)을 두었고 동쪽에는 벽돌로 쌓은 아치형의 협문(夾門)이 있다. 특히 서쪽의 원장외벽은 하부에 4단 사괴석을 쌓고 그 위로 전벽(塼壁)인데 벽에는 무늬를 만들어 화문장으로 하였는데 무늬는 상하의 고리무늬로 테를 두른 계풍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구획마다 사군자(四君子) 등의 수형(樹形) 무늬와 길상문(吉祥文) · 금문(錦文) 등으로 구성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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