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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효종대에서 숙종을 거쳐 영 · 정조 연간(年間)에는 창덕궁은 대규모의 중건이나 수리는 없었으며 효종 때의 만수전(萬壽殿) 건립, 현종 때의 집상전(集祥殿) 영건, 숙종의 대보단(大報壇) 건립, 영조 때의 인정문 화재와 복구, 인조의 대내(大內) 수리 등이 있었다.
「8월 11일 묘시(卯時)에 흠경각을 철훼함으로써 시역(始役)되고,
8월 15일 진시(辰時)에 개기(開基),
9월 8일 묘시에 정초(定礎), 사시(巳時)에 상량(上樑)을 하고,
11월 15일 정역(停役)하였다가 이듬해인 효종 8년 정월 16일에 다시 시역하여, 3월 26일에 필역(畢役)하였으며,
4월 2일 사시에 내이(內移)하였다.」
새로 조성된 만수전 이외에 주변의 당루(堂樓) 등의 수리공사도 있었는데, 상기 의궤에 적힌 전각의 규모를 보면 당내의 자전의 거소에 적합하도록 전루 · 낭무 등과 각종 화계 · 홍교 등이 조성되었다. 그 중 중요한 건물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萬壽殿 36間, 千慶樓 20間, 獻線閣 30間, 五樑家 8間, 外行廊平樓 3間 외에 萬壽殿 주변의 東西 翼閣 · 行閣 및 庫間, 水閣 等 總 180間
春暉殿 20間, 行閣 · 月廊 等 35間, 養志堂 12間, 北邊東山層閣 2間 및 주변의 月廊 等」
특히 이들 전각 중 만수전은 4면에 계석(階石) 4층에 월대(月臺) 4층을 두고 정면 계단에는 석난간을 설치하고 기둥은 당주홍(唐朱紅)에 건물도 진채(眞彩)로 채색하고 춘휘전의 동변에는 6층의 화계(花階)를 꾸몄으며 천경루 서측에는 우물을 두고 홍교(虹橋)를 설치했다고 한다.
대보단은 명(溟8의 황제 신종(神宗)을 향사(享祀)하기 위하여 숙종 30년에 창덕궁 후원에 설치한 단으로 신종이 임진왜란 시 원군을 보내준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영조대에는 인정문이 중수되었는데 영조 20년에 승정원에서 실화하여 인정문과 좌우 행각마저 연소되었던 것을 그 이듬해에 복구하였다. 정조 때에는 창덕궁대내수리도감(昌德宮大內修理都監)을 설치하여 궁의 수리를 실시하였으나 이는 전각의 퇴락된 부분을 고치는 외에 자경당 등의 신축이 있었다.[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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