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외전(外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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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昌德宮)은 태종 5년에 창건된 이래 근 500년 간 왕조역사의 주무대가 되어 왔던 만큼 전각에 많은 변개(變改)가 있어 왔다. 그러나 정전(正殿)을 중심한 궁의 기본 건물들의 위치는 큰 변화없이 제자리를 지켰고 이에 따라 전각의 배치도 기본적으로는 창건 이래의 모습을 현재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덕궁은 창건 때 경복궁(景福宮)의 동쪽으로 당시의 향교동(鄕校洞)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따라서 동궐(東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지세는 경복궁과 같은 넓은 평지가 아니고 뒤로 구릉을 두고 전방에도 낮은 언덕이 있고 좌우로 평지가 열린 모양으로 대지의 서변(西邊)으로는 북에서 작은 개천이 남으로 흘러 청계천으로 모아진다. 이와 같은 대지의 형세에 따라 전각의 배치도 경복궁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즉 경복궁이 전조후침(前朝後寢) 즉 전면에 외전의 정전(正殿) 일곽(一廓)을 두고 후면에 침전(寢殿)이 배치되는 것과는 달리 창덕궁에서는 지세에 적절히 대응하여 전각을 배치시켰던 것이다.
창덕궁의 기본적인 배치 형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궁의 정문은 대지의 서남우(西南隅)에 남향하여 있고 정문을 들어서서는 일단 우측으로 꺾이어 나아가다가 다시 좌측으로 꺾인 곳에 정전 일곽이 남향하여 자리잡게 되며 정전의 동편에 편전(便殿)이 놓인다. 침전은 편전의 동북방에 자리잡고 있으며 침전 일곽의 북으로는 구릉이 있어 전각이 더 이상 뻗어 나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정전의 서측은 개천에 연(沿)하여 각종 궁사(宮舍)가 있고 편전 및 침전의 전방의 낮은 언덕에 면하여 동서로 역시 궁사가 길게 뻗어 있다. 이와 같이 창덕궁은 그 배치에 있어서 전후 관계를 뚜렷이 하거나 대칭을 중시하지 않고 각 전각의 기능에 맞추어 자연 지세(地勢)에 따라 자연스러운 형태를 취하였던 것이다.
이제 〈동궐도〉를 중심으로 순조 연간(年間)과 그 이후의 창덕궁의 전각 배치를 살펴보기로 한다.[註]
순조 연간의 창덕궁의 궁장(宮墻)은 남으로는 정문인 돈화문에서 출발하여 현재 종묘 뒷면의 작은 언덕을 따라 이어지고 그 동단(東端)은 창경궁에 연결되며 서변의 궁장은 작은 개천의 밖으로 개천을 따라 북으로 뻗었으며 궁장의 북방은 후원으로 되고 동은 창경궁에 닿아 있다. 돈화문을 들어서서 우절(右折)하면 금천교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진선문이 있다. 진선문의 좌우 행각(行閣)은 각 6칸으로 이 문을 들어서면 남쪽에 행각 39.5칸이 있어 내병조(內兵曹) · 호위청(扈衛廳) 등이 들어 있다. 진선문(進善門)의 반대쪽으로는 숙장문(肅章門)이 있고 문 우측에 행각 13칸이 있다. 이 부분의 행각은 안으로 좁아진 방형(方形)의 공간을 형성하는데 그 북변이 인정문과 좌우 월랑(月廊)이 된다. 남향한 인정문을 들어서면 품관(品官) 표석(標石)이 남북으로 늘어서고 그 뒤로 월대(月臺) 위에 남향하여 정전(正殿)인 인정전(仁政殿)이 우뚝 자리잡고 있다. 인정전의 전정(前庭)은 모두 돌로 깔렸으며 전정을 둘러싸고 동서남방에 월랑이 있다. 인정전의 동쪽에 편전인 선정전이 역시 남향하여 있으며 4방에 행각이 있고 특히 남행각 중앙의 문에서 선정전 중앙 바로 앞까지 복도 4칸이 나 있다. 이와 같이 정문에서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지나 인정문을 거쳐 인정전과 선정전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창덕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외전(外殿)의 핵심이 된다.
이 밖에 외전을 형성하는 건물은 크게 보아 인정전의 서쪽 일대의 건물군과 인정전의 동남, 즉 선정전의 전면의 건물군이 있다. 인정전 서쪽에 있는 건물은 선왕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던 선원전(璿源殿)이며 어재실(御齋室)인 양지당과 양방 · 옥당 등이 계속되고 개천 건너에 수문장청(守門將廳)이 있다. 선정전의 전면은 대청 · 상서성 · 공상청 등의 궁사(宮舍)가 목자형(目字形)으로 구성되고 그 동쪽에 누상고 · 재은원 · 수자성과 내반원이 있다. 이 주변은 〈동궐도형〉에서는 상이한 부분이 많다. 대청 · 재은원이 있는 이 부분의 동쪽으로 계속하여 많은 전각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부분은 주로 동궁 즉 왕세자를 위한 건물이 많으며 후에 낙선재(樂善齋)가 그 끝부분에 지어졌다. 우선 재은원(載恩院)의 동쪽으로 춘궁주연지소(春宮胄筵之所)라고 한 성정각이 있고 그 남문인 영현문(迎賢門) 옆에 양성재(養性齋), 그 동쪽에 무예청, 그 남쪽에 장직소(將直所) · 금위군번소(禁衛軍番所) 등이 있다. 성정각(誠正閣) 동쪽으로는 중희당이 있으며 〈동궐도형(東闕圖形)〉에는 중희당지 앞으로 승화루가 있고 그 남쪽으로 낙선재가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