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상전은 대조전과 같은용마루가 없는 건물이었으나 피재(被災) 후 재건되지 않아 〈동궐도형〉에서는 빈터로 두었다. 경훈각과 집상전 사이는 후면의 경사지에 길게 화계(花階)를 꾸미고 괴석(怪石)과 화목(花木)을 꾸미어 조원(造苑)이 뛰어났던 곳으로 보이며 집상전 동편의 화계는 남쪽으로 연장되어 대조전 · 희정당이 동원(東苑)을 이루었다. 이들 침전 외에 창덕궁에는 내전에 속하는 건물로 순조 때 대왕대비의 어소(御所)로 지은 경복전(景福殿)과 효종 때 장열왕후(莊烈王后)를 위하여 지은 만수전(萬壽殿)이 있었다. 만수전은 인정전의 북쪽에 있었던 건물로 〈동궐도〉에도 이미 그 자취가 사라진 것이지만 효종이 이 곳에서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다. 만수전을 지을 때 대신들은 태후의 처소는 대내(大內)의 동쪽에 있어야 하며 북쪽에 있는 것이 부당하다는 상소를 하였으나 효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전 북쪽에 건립하였다.[註] 만수전은 그 후 숙종 때 피재되었다. 경복전은 선원전의 북쪽에 있었으며 〈동궐도〉에는 기지(基址)만이 남아 있다.
이상은 주로 〈동궐도〉에 묘사된 순조 연간의 창덕궁의 주요 전각의 배치를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동궐도형〉의 그림과는 그 대부분이 일치하고 있으며 주변 행각들이나 궁사 등에 변동이 엿보일 따름이다. 그런데 창덕궁이 현재와 같이 크게 달라진 것은 일제 강점 이후의 일이다. 내전은 1917년에 피재되었다가 1920년 재건되면서 희정당 경훈각이 변조되었으며 그 이후 진선문과 주변 행각, 선정전 앞의 대청 · 내반원, 인정전 서쪽의 제 전각(殿閣), 성정각 전방의 궁사 등이 모두 철거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