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仁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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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창덕궁인정전(昌德宮仁政殿)
【분 류】 궁(전)
【지정사항】 국보 제225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팔작기와지붕의 다포집으로 창덕궁의 정전이다. 태종 5년 처음 창덕궁이 창건될 때 지어졌다가 세종 즉위년에 개건(改建)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탄 것을 광해조(光海朝)에 중건하였으나 순조 3년에 다시 피재(被災)되고 이듬해 순조 4년에 중건되었다. 당시 철종 7년에 와서 건물을 뜯어내고 다시 짓는 공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 때에는 순조 4년의 중건례(重建例)를 그대로 따랐으므로 건축 양식에는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註]
한말에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讓位)하고 나서 고종은 창덕궁에 이어(移御)하였는데 이 때 내부를 일부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각 마루 양성에 당시 국장(國章)이던 이화문장을 현괘(懸掛)하였다. 이상의 건물 연혁으로 보아 현존 인정전은 순조 4년 때의 양식을 간직한 건물로 볼 수 있다.
기단(基壇)은 이중기단으로 짜임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이중의 장대석(長臺石)을 쌓고 그 위에 부연(附緣)이 있는 장대갑석을 놓았다. 기단 전면 중앙과 그 좌우에 석계(石階)가 설치되었다. 중앙의 석계우석(石階隅石)은 그 끝이 수두형(獸頭形)으로 조출(造出)되었고 석계 가운데의 판석(板石)에는 상면의 운간(雲間)에 쌍봉(雙鳳)을, 삼방 측면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새겼으며 층계석 전면에도 면을 다듬고 당초문을 새겼다. 건물은 이중기단 위에 장대석 댓돌을 한단 더 높이고 그 면에 원형 초석을 놓고 초석 높이와 같게 고막이돌을 짜 돌렸다.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로 하층은 10개의 평주(平柱)와 10개의 고주(高柱), 그리고 4개의 우고주(隅高柱)로 되고 중앙 후면 고주와 평주간(平柱間) 사이에 방형(方形) 평면의 옥좌(玉座)가 놓였다. 상층도 18개의 병연주와 하층에서 올라오는 우주(隅柱)와 고주로 구성되었다.
하층의 축부(軸部)는 전면 중앙 3칸과 후면 중앙의 1칸, 좌우측의 1칸만을 문비(門扉)를 달기 위하여 하방만을 짜 돌렸고 그 외의 문은 모두 사분합(四分閤)의 광창(光窓)을 들이기 위하여 높직한 머름창방을 짜 돌렸다. 사분합 위 즉 기둥 윗몸에는 창방(昌枋)이 결구(結構)되고 그 위에 평방(平枋)을 놓아 공포(包)를 받았다. 상층은 멍에창방 위로 중방을 들여 빗살문의 교창(交窓) 을 받게 하고 그 위는 하층과 마찬가지로 하였다. 공포의 짜임은 상하층 같게 내4출목, 외3출목으로 밖은 삼제공에 모두 쇠서를 만들고 그 위에 삼분두(三分頭)된 보머리를 두었다. 내부는 살미첨차 뒷몸이 모두 한데 모여져 운궁(雲宮)이 되고 이 운궁이 뻗어 올라가 주간에서는 내목도리(內目道里)를 받았고 보 아래에서는 보를 받는 양봉(樑捧)이 되었다. 가구(架構)는 고주간(高柱間)을 대량(大樑)이, 4면의 툇간(退間)에는 고주와 평주간을 퇴량(退樑)이 지나도록 하였다.


「二十間二層內九包外七包柱長十六尺樑通二間十五尺式前後退十五尺式道里通御間二十尺左右挾間十五尺式左右退十五尺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