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의 조성연혁(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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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11년 5월에는 서총대(瑞蔥臺)의 조성을 명하였는데 실록에 「전하여 왈 경회루와 같이 후원에 신대(新臺)를 만들어라.」 라고 하였으며 동 12년 정월의 기록에는 「후원에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었는데 석난간(石欄干)에는 용을 조각하였고 그 대는 높이 10여 척으로서 천인(千人)이 앉을 수 있었다. 서총대라 이름하였다. 대전(臺前)에는 대지(大池)를 굴착하였다.[註]」 라고 하였다. 서총대는 앞의 기록으로 보아 넓은 대를 말하는 것이고 그 위에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대상(臺上)에 천 명이 앉을 수 있었다고 하므로 그 규모가 매우 장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서총대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연산군의 폐위와 함께 공사가 중단되고 중종이 즉위한 후에는 철훼되고 말았다.[註] 임진왜란시에 창덕궁은 모든 전각이 소실되고 궁은 그 후 약 20년 간 폐허로 되었다. 따라서 후원도 이 기간 동안에는 폐허화되어 방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초에 창덕궁이 복구되면서 후원에 대한 의하면 광해군 2년에는 후원내에 기화이목(奇花異木)과 괴석(怪石)을 도락(度樂)할 수 있도록 하였고 원유화석(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