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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五間二翼工柱長八尺五寸樑通御間十尺前後退四尺五寸式道里通三間八尺三寸式左右退四尺五寸式」
이라 하였고 남행각 7각(閣)이 있었다고 적었다. 현재는 장대석(長臺石)으로 3단의 기단이 높게 쌓여지고 그 위로 툇간(退間) 3면을 개방한 정자형(亭子形) 건물이 남아 있다. 평면은 북측의 옥실(屋室) 1칸만을 온돌로 꾸몄고 가운데 2칸의 대청과 3면의 툇간(退間)은 마루를 깔았다. 대청의 3면은 문비(門扉)를 들어올리면 3면의 경승(景勝)을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공포(慊包)는 이익공(二翼工)이고 대청과 툇간에는 우물천장을 들였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양성하지 않은 마루 끝에 취두(鷲頭) · 용두(龍頭) 등이 놓였다. 온건한 색조의 모루단청을 하였으며 대청 측면으로 계자각(鷄子欄干)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은 숙종이 왕자 · 왕손을 이 곳에 모아 놓고 상화(賞花)를 하기도 하고 영조가 공신을 인견(引見)하여 사시(賜詩)하기도 하였으며 순조 때에도 문무신하가 모여 시예(試藝)를 벌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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