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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종친부(宗親府)
【분 류】 관아
【지정사항】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1
정1품아문 중의 하나인 종친부(宗親府)는 지금의 종로구 화동 1번지에 일부의 유구(遺構)를 남기고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재는 옛 종친부 공해 중 일부에 불과한 극히 적은 부분만이 전하고 있어서 원래의 모습 전반을 보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중당(中堂)과 익랑(翼廊)으로 연결된 익사(翼舍)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원래 중당의 바른쪽에도 왼쪽 익사와 같은 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전혀 없다.
화강석을 다듬은 장대석(長臺石)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중당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이익공계(二翼工系) 양식의 겹처마로 구조는 이중량(二重樑) 칠량가(七樑架)이며 파련대공(波蓮臺工)에 팔작지붕이다. 익사는 중당보다 격을 낮추었고 규모도 작아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을 잡고 익공계 양식으로 공포(慊包)를 짰다.
원래 종친부는 왕실 제군의 봉작(封爵) · 승습(承襲) ·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곳으로 대군(大君) · 왕자군(王子君) · 제군(諸君) · 도정(都正) · 정(正) · 부정수(副正守) · 부수(副守) · 영(令) · 부령(副令) · 감(監) 등의 계층이 있었다. 유사당상(有司堂上) 3인은 1품과 2품의 종반(宗班)으로 임명하는데 종친의 봉작과 증직(贈職) 및 종친의 통솔을 담당하였다. 1864년 위의 일을 결재하던 종부시(宗簿寺)를 이 곳에 합치고 1894년 종정부(宗正府)라 개칭하였다. 이듬해 종정사(宗正司) · 종정원(宗正院)으로 하였다가 1905년에 다시 종부시로 개칭하였으나 1907년 폐지되고 사무는 규장각으로 옮겼다.
경복궁 동쪽 출입문은 건춘문(建春門)이고 이 문은 종신(宗臣)과 외척 및 부마(駙馬)인 척신(戚臣)만 출입하는 만큼 종친부가 이 가까이 있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또 종친부 옆에는 부마의 인사 문제를 다루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어 종실의 사무 분장을 하기에 편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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