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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도 별도의 공해를 마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조에 속한 춘추관 · 홍문관 · 예문관 · 성균관 · 교서관(校書館) · 승문원 · 내의원 · 사역원(司譯院) · 장악원(掌樂院) · 통례원(通禮院) ·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 예빈시(禮賓寺) · 태상시(太常寺)[봉상시(奉常寺)] · 관상감(觀象監) · 전의감(典醫監) · 종묘서(宗廟署) · 사직서(社稷署) · 혜민서(惠民署) · 활인서(活人署) 등에도 저마다의 청사가 있었다. 이중에 태상시의 공해를 예로 열거하여 대략의 상황을 예시한다.
태상시(太常寺)는 종묘 · 사직을 비롯하여 각처에 제의(祭儀)를 지내는 일과 시호를 논의하는 일 등을 맡아 하였다. 봉상시 · 전사시(典祀寺) 등으로도 불렀다. 본아(本衙)는 원래 서부 여경방(餘慶坊)에 있었는데 광해군이 그 자리에 경덕궁을 짓게 되자 인달방(仁達坊)의 대창동(大倉洞)으로 옮겼다.
태상시에는 언덕 위에 신실(神室)이 있고 나머지 청사 건물들은 그 아래에 포치하여 있다. 신실은 낮은 담장에 열린 신문(神門)을 통하여 들어선 안마당에 있는데 문내(門內)에는 수복방(守僕房)이 있고 신실 뒤편에는 이안청(移安廳)이 있다.
태상시의 중심 건물인 관대청(官大廳)은 5량의 8칸 규모인데 방이 2.5칸이고 퇴청이 칸 반이며 대청이 5칸이다. 제기의 보관과 공급을 위해 제기고(祭器庫) 3칸과 사제기고(沙祭器庫) 2칸이 준비되어 있었다. 제수용의 자성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