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사창(飜沙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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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번사창(飜沙廠)
【분 류】 관아
【지정사항】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1호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28-1

1884년 6월 9일에는 탄약 제조와 무기고의 역할을 하는 번사창(飜沙廠)을 삼청동의 군기시 화약고인 별창 자리에 세웠다. 종로구 삼청동 28-1에 위치한 동 건물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평 198㎡의 이 집은 장대석(長臺石)사괴석(四塊石)으로 된 토대 위에 세워졌다. 겉은 회색 벽돌로 벽체를 쌓았고 붉은 벽돌로 견치형(犬齒形)의 띠를 두른 위에 왕대공(王臺工) 지붕틀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맞배지붕이 된다. 아치형으로 된 정문은 화강석으로 꾸며졌는데 측면문은 붉은색 벽돌로 띠를 넣어 장식하였다.
상량문은 이경직(李庚稙)이 짓고 이응익(李應翼)이 썼으며 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은 김윤식(金允植), 한규직(韓圭稷), 박정양(朴定陽), 윤태준(尹泰駿), 이조연(李祖淵)으로 되어 있다.
번사창(飜沙廠)은 일제 때에 세균 실험실로 변하였다가 광복 후 미군정 때에는 중앙방역연구소가 되었다. 정부 수립 후에는 국립사회복지연수원으로 쓰였고 1970년에 한국은행에 불하되어 한국금융연수원 소속으로 되어 있다.
개화의 물결을 타고 고종 19년(1882)부터는 행정 기구의 개편이 시도되어서 동년(同年) 11월 29일에는 신설된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이 내병조(內兵曹)의 아사(衙舍)를 청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내병조(內兵曹)는 호위청(扈衛廳) 자리로, 호위청(扈衛廳)은 요금문(曜金門) 안의 공해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이듬해 1월 23일에는 사섬시(司贍寺)가 혁파되자 권초각(捲草閣)만이 남게 되었다. 동년 4월에는 청나라에서 신식 무기를 제작하는 기술자를 초빙하여 삼청동에 북창(北倉)을 열고 군기제작소(軍器製作所)를 만들었다. 이어 1884년 기기국(機器局)이 창설됨에 따라 군기시(軍器寺)는 이에 합병되었고 1894년에는 군기시가 완전 폐지됨에 따라 일부 잡무는 삼청동의 군기시 화약고인 별창에서 취급하였다.
한편 1883년 7월 5일에 전환국(典局)을 북창동에 설치하여 지폐의 제조를 시작하기도 하였는데 10일 뒤인 15일엔 저동에 신식 인쇄기를 설치한 박문국을 개설하였다. 1884년 10월 17일엔 우편 제도의 근대화를 표방한 우정총국(郵征總局) 청사의 낙성이 있었다. 이 우정총국의 한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는데 큰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 때의 개화 물결을 타고 신설된 아문들에 대하여는 따로 별표를 작성하여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