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議政府址)
> 문화사적 > 건축물 > 관아유지 > 의정부지
 

   의정부는 광화문 밖 동편(東便) 첫머리 북부 관광방(觀光坊), 즉 현재 종로구 세종로 76번지에 있었다. 그러나 한때 의정부는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서쪽에도 있었다.
의정부는 고려 때의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개칭한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관으로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서정(庶政)을 총리(總理)하였다.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칭된 것은 정종 2년(1400) 4월로서 그 이듬해 태종 1년(1401) 7월에 관제 개혁으로 의정부는 명실상부한 최고 행정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태종 14년(1414)에 와서 의정부의 권한이 너무 강대하고 육조의 업무량이 과다하여 행정 업무가 정체되는 폐해가 적지 않자, 하륜(河崙)의 건의로 의정부의 업무를 육조에 이양시키고 기구를 축소시키며 권한을 줄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의정부는 외교 문서의 고열(考閱)과 사형수를 복심(覆審)하는 유명무실한 최고 행정기관이 되어 전일의 넓은 청사는 빈집과 다름없게 되었다. [註]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세종 18년(1426)에 이르러 의정부 기능을 태종초의 당시와 유사하게 개편, 강화하였다. 이로써 영의정이 국무총리격이 되어 그 밑에 좌의정, 우의정, 좌찬성(左贊成), 우찬성(右贊成), 좌참찬(左參贊), 우참찬(右參贊)이 두어지는 직제가 마련되었고 그 임무는 육조의 공사(公事)를 심의한 뒤 이를 왕에게 계달(啓達)하여 결재를 받아 회송(回送), 시행케 하는 서사(署事)를 실시함으로써의 의정부는 명실상부한 최고 행정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등극한 세조는 세조 1년(1455) 8월에 의정부의 서사를 다시 폐지시켜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조선말에 와서 고종 32년(1895), 의정부의 명칭을 일시 내각(內閣)이라 하다가 광무(光武) 원년(1897)에 의정부라 하였다.
한편 의정부 청사는 태종이 개경으로부터 환도하여 창덕궁에 들자 의정부와의 거리가 멀어 왕래가 불편하므로 의정부 조방(朝房)을 창덕궁 진선문(進善門) 밖에 짓고 낭청(郞廳)과 서리(書吏)를 보내서 머물게 하여 왕궁 및 승문원(承文院)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게 하고, 성종 때에는 창경궁에도 의정부 조방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