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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자시(內資寺)는 서부 인달방(仁達坊), 즉 종로구 내자동 어의궁(於義宮) 자리(전일의 경찰피복창)에 있었다. 내자동의 동명도 이 곳에 내자시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註]
내자시는 궁중에 미곡, 면류(麵類), 주류,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궁중 연회 및 직조물 등을 공급하는 관아였다.
조선 건국초에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의성고(義成庫)를 두었는데 태종 3년(1403)에 내자시로 개칭했다.
조선초에 정(正, 정3품) 1명, 부정(副正, 종3품) 1명, 첨정(僉正, 종4품) 1명, 판관(判官, 종5품) 1명, 주부(主簿, 종6품) 1명, 직장(直長, 종7품) 1명, 봉사(奉事, 종8품) 1명씩을 두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 감축되었다가 고종 19년(1882)에 폐지된 후 이 일을 사옹원(司饔院)에서 장악하게 했다.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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