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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시(禮賓寺)는 처음에 의정부 남쪽에 설치했다가 서부 양생방(養生坊), 현재 중구 태평로 2가로 옮겼다. 그 후 정조 2년(1778)에 본시는 중구 소공동에 있던 남별궁(南別宮)으로 이전했다가 서부 회현방(會賢坊), 현재 중구 북창동으로 다시 옮겼다. 오늘날 북창동에 빈텃골, 즉 공대동(空垈洞)이란 동명이 전해 오는 것은 이 곳에 예빈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시는 손님 접대와 연향(宴享) 및 종재(宗栽8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관아였다.
조선초 예빈시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묵은 쌀을 가지고 고기를 기르는 일이 있었다. 태종이 이 말을 듣고
「쌀이 묵고 썩었다고 해도 채소보다는 나을 것이다. 백성들이 굶주려도 모두 구제하지 못하는데 어찌 쌀로 고기를 기를 수 있느냐.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라.」
고 하여 그 후로는 고기를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본시의 관원은 호조판서가 겸하는 제조(提調)와 제검(提檢) · 별좌(別坐) · 별제(別提) 6명을 정(正) · 부정(副正) · 첨정(僉正) · 판관(判官) · 주부(主簿) · 직장(直長) · 봉사(奉事) · 참봉(參奉) 각 1명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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