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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안팎의 산하형세가 좋은 것은 옛날부터 말하여 오는 터이며 사방으로 도로의 거리가 균평(均平)하고 수륙의 교통이 잘 되는 곳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여 길이 후세에 전하는 것이 참으로 하늘과 사람의 뜻에 합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600여년 전 조선 태조 3년(1394) 8월 왕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새 도읍 후보지로 무악 · 한양 · 도라산 등지를 구경하고 옛 수도 개성으로 돌아갔을 때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 우정승(右政丞) 김사형(金士衡) 등이 왕께 아뢴 말이다. 또 왕은 이들 조준, 김사형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해 9월에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 등을 판사로 임명하여 관계자들을 한양으로 보내어 궁궐기지의 상정과 도시건설계획을 진행시켰다.[註1] 따라서 조선조의 한양정도가 이곳의 산하형세가 좋고 그 위치가 나라의 중앙이므로 수륙의 교통이 편리한 데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나라의 수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지리적으로 국내에서의 사방 거리 및 교통관계와 함께 국방상의 위치도 매우 중시하였는데, 서울의 지리는 그 점에서도 적합한 것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처음 서울을 전도후보지로 간심(看審)할 때 왕을 수행하였던 왕사 자초(自超, 無學)가 '이곳은 사면이 높고 빼어나며 중앙이 평행하여 성읍을 삼을 만합니다'[註2]고 한 것은 지금의 서울성곽을 중심으로 한 지리를 말한 것이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다시 서울의 지리적 여건을 이렇게 말하였다.

「북쪽에 화산(華山, 삼각산)으로 진산을 삼았으니, 용이 내리고 범이 쭈구려 앉은 형세가 있고 남쪽은 한강으로 금대(襟帶)를 삼았으며, 멀리는 왼쪽으로 대관령을 끌어 당기고 오른쪽에는 발해가 둘려서 그 형세가 동방의 제일이요, 정말 산하 요해의 곳이다[註3]

이러한 서울의 산수 형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둘도 없는 좋은 곳이고, 국방상으로도 산과 강이 겹겹이 둘러쌓인 요새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삼국시대에 있어서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점령하였던 사실이나 이 지역을 차지한 나라가 대개 다른 두 나라를 제압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옛날의 서울 즉 한성부는 대개 도성을 중심으로 경역이 성외 약 10리의 지점에 이르렀던 것으로서 동 · 북 · 서 삼면(三面)은 경기도 양주군과 고양군으로 둘러 싸이고 남쪽은 한강을 건너 광주, 과천, 시흥 등지와 상대하여 있었다. 도성의 동 · 남 · 서 · 북을 연결하는 낙산, 남산(목멱), 인왕, 북악의 기봉은 수도 서울의 명승을 이루었으며, 그 밖으로는 수락, 북한, 백련산 등의 봉만이 동 · 북 · 서의 3면을 첩첩이 둘러 싸고, 남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의 긴흐름은 수도 서울의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또 이 한강은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옛날에 있어서 국가 세곡의 수운은 물론 남북물화가 집산하는 서울의 통로와 수출입의 관문도 되었던 것이다. 한편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서울의 지역도 넓어지게 되고 위치도 많이 달라졌다. 종전 성내와 성외 10리지역에 한정되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동 · 북쪽으로도 많이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 · 서쪽으로는 한강을 건너 전의 광주, 시흥, 김포 등 여러 고을의 많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그 경계를 보면 대개

「동쪽은 경기도의 양주군 · 광주군-동경 127도 12분, 북위 37도 33분 서쪽은 부천군 · 김포군 · 고양군-동경 126도 47분, 북위 37도 34분 남쪽은 광주군 · 시흥군-동경 127도, 북위 37도 26분 북쪽은 고양군 · 양주군 · 의정부시-동경 127도, 북위 37도 42분」

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인구도 1천만을 포용하고 있다.[註4] 여기에 다시 국력의 증강,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수도서울의 새로운 발전도 괄목할 만한 것으로서 종래 광주 · 시흥 · 김포 등의 지방과 경계를 이루던 한강에는 지금 20개의 다리가 가설되어 강남지역과 연결되며, 서울을 중심으로한 철도 · 고속도로는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지위향상과 정치 · 문화 · 산업 등 각 부문의 눈부신 발전을 김포공항을 통한 내외국인의 출입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니, 서울을 중심으로 성장되는 우리의 국력, 우리의 문화는 육상 · 수상을 통해서 만이 아니라 넓고 넓은 공로(空路)를 통하여 세계로 신장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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