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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전도 당시의 서울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는데 대하여 한강은 지금의 서울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다. 강원도 삼척군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은 양수리 부근에서 서로 합치어 팔당을 지나 용산의 남쪽을 흘러 서해로 들어간다. 중 · 하류는 비교적 유속이 완만하여, 하도(河道) 변천과 퇴적작용이 심하여 하상이 높아져가고 있다. 약 300년 전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강원도 지방을 여행한 경험으로 '홍수가 나고, 산이 무너져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와서 한강의 깊이가 점점 얕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다.[註6] 중 · 하류 하안에는 충적평야(庶積平野) · 하적호(河跡湖) · 자연제방(自然堤防) 등이 여러 곳에 형성되었고, 특히 하류에는 여의도 · 난지도 같은 하중도가 생기고, 임진강과 합류되는 하구 부근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전답에 이용된다. 강의 길이는 514㎞, 평균경사 32/10,000, 여러 지류가 수지상으로 발달되어, 그 유역은 2.6만㎢나 된다. 서울은 그의 하류의 양안부를 차지한다. 상 · 중류의 물은 발전, 농업관개에 이용되고 하류인 서울부근에서는 공업용수 상수원으로 이용된다. 하항(河港)으로서 옛날에는 상류지방의 물화를 집산하는 뚝섬과 하류와 서해상의 물화의 양육지(揚陸地)로서 마포가 있었으나 지금은 휴전선으로 하류의 교통이 제약되자 옛모습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한강의 교량과 나루터로서 한강대교(서울-상도동간)의 노량진, 양화대교(서울-영등포간)의 양화도, 한남대교(서울-한강구간)의 한강도, 서울 · 광주간의 송파도, 광탄(廣灘) 등이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도진(渡津)은 그 자취를 감추고 교량만이 교통의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한강은 역사적으로 대수(帶水) · 아리수(阿利水) · 욱리하(郁利河) 등으로 불렀고 백제에서는 한수라고 하였는데, 이 이름이 오늘까지 사용되어 왔다. 특히 중 · 하류의 양안은 백제의 근거지로서 하북 · 하남위례성이 있었고, 고구려는 이곳의 백제세력을 금강유역으로 쫓아내었다. 후에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지(地)의 이(利)를 얻어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요컨대 한강유역은 삼국시대에 있어서 삼국간의 쟁패지가 되던 한반도의 요지이다. 근세에 와서도 조선조의 수도가 하북 한성에 정해지자 한강은 부산(負山) 대수(帶水)의 대수격(帶水格)이 되었고, 서울이 조선의 정치 · 문화 · 경제의 중심지가 되는데 큰 몫을 하였다. 최근 본강 하류에서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유물 ·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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