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起伏)의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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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당시의 서울에는 여러 곳에 많은 고개가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남산 · 인왕산 · 백악산의 산각이 중앙부 청계천 본류로 뻗어내려 마치 포복하는 것 같이 되었다. 이러한 산각은 청계천 및 그 지류의 침식 또는 퇴적으로 그 기복이 상당히 뚜렷하였지만 지금은 복개공사 및 도로개수로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가령 남산 방면에서 북쪽으로 뻗었다고 생각되는 산각을 동에서 서로 또는 그 반대로 넘으려면 거기가 바로 고개가 될 것이다. 즉 산각은 남북으로 뻗는데 길은 지금의 종로 · 을지로같이 동서로 통하게 되어 그 교차점에 자연히 고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남산터널(tunnel)편에서 북쪽으로 뻗는 산각은 필동 · 충무로5가를 거쳐서 을지로까지 이르러 청계천 연변에서 없어지는데, 동서의 길과의 교차점에 여러 고개가 있다. 풀무고개(冶峴)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서쪽의 한 지맥은 인현동에서 인현고개가 되고 또 한 산줄기는 다시 을지로를 지나는데 구리개(銅峴)가 있다. 동서 양단을 다 구리개라고 하였는데 최근에는 동단만을 구리개로 부르게 되었다. 진고개(泥峴)도 그 여맥에 속한다. 남산의 서남쪽인 지금의 후암동에는 남단현 등 세 고개가 있었고 신용산 방면에는 와현(瓦峴)이 있었다. 북악방면에서 남쪽으로 뻗는 산각을 보면 창덕궁 뒤에서 서울의대를 거쳐서 종로4가로 뻗은 것 중에 몇 개의 고개가 있다. 서울대학병원 후문과 창경궁 월근문 사이에 박석현이 있고 종로4가에 이르러 배고개(梨峴)가 있다. 그리고 동소문 앞 고개를 동소문현, 창경궁 · 창덕궁 중간에 있는 것을 건양현이라 하였다. 창덕궁의 서쪽으로 뻗는 산각 중 하나는 계동일대에서 지금의 현대그룹 건물에 이르는데, 이곳에 관상대가 있었던 유래로 관상현 또는 운현이 있고, 가회동에서 안국동으로 뻗는 산각은 북으로부터 맹현(孟峴) · 안현(安峴, 安國洞 105번지 부근) · 송현(松峴, 한국일보사 건너편)이 있어 지금도 그 고개에 유래한 동명이 있다.
서쪽 인왕산에서 동으로 뻗는 산각은 체부동(體府洞) · 청운동(淸雲洞)에 걸치었는데 거기에는 대 · 소무명의 고개가 많았었다. 그 중에서도 내자동의 남정문현, 당주동의 야주현, 누상동의 누각현은 지금도 그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인왕산 서북편의 현저동 방면에는 사현이 있고, 영천을 지나서는 무악현(毋岳峴)이 있다. 그외에 정동에 몇 개의 고개가 있었고 광화문 십자가에 황토현(黃土峴)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고개는 지금은 도시계획에 따라 거의 평지가 되어 잘 알아 볼 수 있게 되었고, 다만 이름만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