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부 청사(京城府廳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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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청(京城府廳)은 1914년 10월에 발포된 부제령(府制令)에 기초하여 제정된 경성부를 관리하는 관청으로서, 1910년 10월에 공포(公布) 시행된 조선총독부 칙령(勅令) 제357조의 지방관제(地方官制)에 의해 종래의 한성부(漢城府)가 경성부로 고쳐져 경기도 소속이 되었다. 이에 경성부청은 경기도청의 관할하에 일반 공공사무 및 법령에 의한 부(府)에 관한 일체의 사무처리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성부청은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한 것이 아니고 단지 경기도의 한 지역의 자치제(自治制)를 담당하는 관아(官衙)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 경성부의 청사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광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2층 건물(현재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이었다. 경성부청사는 1885년 남산 왜장대에서 시작하여 1895년 구(舊) 일본총영사관으로 옮겨졌으며 1906년에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시 경성이사청(京城理事廳)이라고도 하였으나 1910년부터는 경성부청으로 정식 접수되었다.
따라서 경성부의 사무일체는 일본영사관이었던 구청사(舊廳舍)에서 담당하였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경성부의 도시적 기능이 팽창되어 감에 따라 인구 및 경성부청의 행정업무 역시 증가되어 구청사의 좁은 장소에서는 사무처리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에 경성도시계획연구회에서 경성부 청사의 신축을 요청하게 되었고 총독부에서도 부정(府政)의 현황에 따라 경성부 청사의 신축을 인정하였다.
경성부는 1923년 2월 경성부 청사신축을 위한 제1차 임시 부협의회(臨時府協議會)를 개최하여 이에 관한 건(件)을 토의하고, 동(同) 6월에 제2차 부협의회를 개최하여 신축에 관한 예산을 토의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경성부 신청사에 관한 공사비 [註1]는 총 826,293원(圓)이 들었으며, 공사기간은 1925년 3월에 착공하여 1926년 10월에 준공되어 만 1년 7개월이 소요되었다. 구조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근대식 건물로 총 건평은 2,502평이며 벽체(壁體)는 벽돌로 처리하였으나 외면벽은 화강암과 인조석을 이용한 석조(石造) 형태를 이루었다. 또한 신청사(新廳舍)는 일본의 의사당(議事堂)을 모방한 절충주의의 형식 [註2]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중앙탑(中央塔)의 돔(dome)이나 창문구조 등에서 이러한 형식을 볼 수 있다.
경성부 청사 신축부지의 선정에 대해서는 처음에 중론(衆論)이 많았으나 황금정(을지로)과 남대문통(남대문로) 그리고 태평통(태평로)을 잇는 삼각지대로서 부근의 무교정(무교동)은 일본인의 주상업지역이며, 동시에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장곡천정(소공동)과도 연락이 되는 요충지인 현재의 위치로 결정되었다. 이곳은 또한 지세적(地勢的)인 면(面) 이외에도 지형적인 면으로서 평면 위에 있는 「산(山)」자형으로서 타지역 보다는 지반이 약간 높은 편에 [註3] 속한다.
청사의 규모는 4층 높이의 건물로 정면 중앙부 탑은 6층이나 후면 회의실은 3층, 좌우 사무실 앞 복도의 일부는 2층으로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를 지형(地形)에 따라 설계하였다.
정면(正面)은 28간(間) 4분(分)이며 동쪽은 10간 7분, 서쪽은 23간 5분, 중앙의 오행(奧行)은 23간 3분이다.
부지(敷地)의 면적은 1,630평이며 건물의 높이는 66척(尺) 6촌(寸)이나 중앙탑의 높이는 118척이다. 건평은 668평 4합(合) 2작(勺)이며 실수(室數)는 모두 97실이다. 이를 층별로 보면 1층이 668평 4합 2작, 2층 668평 4합 2작, 3층 590평 9합 7작, 4층 465평 1합 7작, 5층의 탑부분은 69평 28작, 6층의 탑부분이 40평 1합 1작으로 총 평수는 2,502평 3합 4작이다. 청사의 내부배치를 층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제1층 : 호적계, 세무과, 안전고(安全庫), 수부실(受付室), 숙직실, 전화교환실, 수도과분실(水道課分室), 공중식당, 소사실(小使室), 탕비장(湯沸場), 기관실(汽關室), 전기실, 충전실(充電室), 창고, 전화실 등
제2층 : 세무과, 회계과, 수도과, 위생과, 문서계, 영선계(營繕係), 응접실 등
제3층 : 부윤실(府尹室), 부윤응접실, 회의실, 의원공실(議員控室), 토목과, 비서계, 내무계, 권업계(勸業係), 학무과, 신문기자실 등
제4층 : 정청(正廳), 귀빈실, 귀빈응접실, 의원공실, 도시계획계, 응접실, 위원회실, 식당 겸 도서열람실, 附屬室, 기타 예비실 2실(室), 봉안고(奉安庫) 등
제5층 : 청사실(靑寫室), 승강기 기계실
제6층 : 응접실<건물의 기초(基礎)> 건물의 기초 공사는 18∼15척(尺)의 깊이에 총 450군데에 철근콘크리트를 하여 그 속에 대들보[양(梁)]를 설치하는 특허(特許) 압축식 항타(杭打)지형을 만들었다. 따라서 사무실 복도의 아래쪽에는 직경 5촌(寸) 정도의 굵은 소나무를 길이 15척으로 잘라 넣음으로써 인위적인 혼응토(混凝土)지형 [註4]을 형성하게 되었다. <벽체(壁體)> 벽체는 대개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했으나 주간(柱間)은 벽돌을 쌓아 막벽(幕壁(Cutain wall)) 형식으로 처리하였다. [註5] 외면벽(外面壁)의 정면은 2층 창까지, 배면(背面)은 1층 창까지 하부(下部) 징두리에 화강암을 길게 절단하여 붙였다. 그 외는 전부 리싱을 칠한 위에 일부만을 인조석(人造石)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전체모양이 석조의 형식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註6] 내면(內面)벽은 건물 내부 전체에 페인트와 회(灰)칠을 하여 실내의 조명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처리되었다. <바닥> 바닥은 현관의 경우 수마(水磨)화강암을 길이로 자른 것을 사용했고, 1층 계단의 홀, 공중식당, 동서북 현관, 1 · 2층 복도는 대리석을 사용했다. 화장실, 수세실(手洗室), 욕실(浴室) 등은 타일을 쓰고 2 · 3 · 4층 계단의 홀에는 모자이크타일을 붙였다. [註7] 일반사무실 바닥은 리놀륨판을 사용했으나 숙직실 소사실(小使室) 등에는 다다미를 깔았다. 그외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室에는 모르타르를 칠하여 마무리 하였다.
<지붕> 청사의 지붕은 철근콘크리트 슬라브 위에 아스팔트와 펠트, 마루소이드를 칠함으로써 6층 지붕을 만들고 표면에는 자갈을 붙였다. [註8] 탑과 회의실은 콘크리트 위에 동판(銅板)을 부착시켰으며 발코니는 6층 지붕위에 타일을 붙임으로써 자연스러운 배치를 하였다. <각실의 구조> 각 방의 배치 및 구조와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대현관(大玄關)의 홀과 계단부분에는 대리석을 사용하고 출입문은 와니스를 칠했다. 정면의 양쪽 기둥과 천정에는 샨데리아식 전등을 부착함으로써 우아한 멋을 풍길 수 있는 처리를 하였다.
① 호적계 · 세무과 · 수도과 · 회계과 등에는 대리석으로 접수대를 만들었고 일부 금속이 필요한 부분은 청동을 도금하였으나 목재로 된 곳은 와니스를 칠함으로써 매끄러운 감을 느끼게 했다. [註9]
② 안전고(安全庫) 주위의 벽은 두께 1척 6촌 8분의 철근콘크리트로 만들고 출입구는 큰 창고의 금고문(金庫門)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註10]
③ 부윤실(府尹室)은 바닥에 카페트를 깔고 요우목판(腰羽木板)을 붙인 곳에는 와니스를 칠하여 광택처리를 했다. 벽면은 종이로 도배를 하여 아늑한 느낌을 주게 만들었고 커튼은 화조(花鳥)모양을 손으로 뜨개질 한 레이스를 사용했다. [註11]
④ 회의실의 바닥에도 카페트를 깔았으며 요우목판(腰羽木板)을 붙이고 와니스를 칠했다. 방청석(傍聽席)은 세단계로 만들어 회의장면을 방청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커튼은 실루엣 형태로 처리하여 때에 따라서는 암실(暗室)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註12]
⑤ 귀빈실 · 귀빈응접실은 마루바닥 위에 융단을 깔고 요우목판을 붙인 위에 와니스를 칠했다. 벽은 종이로 도배를 하고 커튼은 이태리제(製) 벨벳을 사용했다. [註13]
⑥ 의원공실(議員控室) · 위원회실(委員會室)의 바닥에는 융단을 깔고 요우목판을 붙인 위에 와니스 칠을 했다. 벽에는 로얄색의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다시 니스로 덧칠함으로써 온유한 빛을 내도록 하였다. 커튼은 손으로 뜬 레이스를 사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처리하였다. [註14]
⑦ 일반응접실은 바닥에 리놀륨판을 깔았고 나무부분에 페인트 칠을 했다. 커튼의 소재는 모사자(毛斜子)를 사용하여 다소 검소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다. [註15]
⑧ 그 외 화장실 세면소 등의 벽에는 타일을 붙이고 바닥에는 대리석이나 인조석을 사용하였으며 방수(防水)처리를 하였다. [註16]<통로(通路)> [註17] 복도의 정면에 대현관을 만들고 동서 양쪽에 소현관을 만들어, 일반사무실로 통하는 동쪽의 소현관을 회의실과도 통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들 현관 이외에도 5군데의 출입구와 승강기 2대를 설치하고 모두 7군데에 비상출입구가 있어 각층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하였다.
<기타 시설> 경성부 청사의 건물자체가 철근콘크리트로 축조된 내화(耐火)구조물이므로 화재에 대한 염려는 없으나 비상의 경우에 대비한 방화시설(防火施設)로 [註18] 건물 전체를 3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의 각층(各層) 복도 끝에 방화(防火) 셔터문을 달았다. 특히 동측에 있는 창에는 창틀을 철제(鐵製)로 하여 불길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도록 설계되었다. 벽 가운데에 수도급수관(水道給水管)을 통과시켜 각층의 복도에 12군데의 수도소화전(水道消火栓)을 배치함으로써 화재발생시에는 호스를 이 곳에 끼워 진압하도록 되어있다.
난방(煖房)관계는 [註19] 중력식저압증기난방장치(重力式低壓蒸氣煖房裝置)에 의한 주식방열기(柱式放熱器)를 설치한 직접난방법과 사무실의 바닥 아래에 방열기를 장치하여 그 온기(溫氣)로써 실내를 덥혀주는 간접난방법의 두 가지를 사용했다. 전자는 주로 일반집무실과 부윤실등이고 후자는 회의실의 방청석에 설치하였다.
전화(電話)시설 [註20] 은 구내에 102개의 자동교환 장치를 하여 구내의 국선과는 버튼[압구(押**)]을 누르면 접속이 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교환수들은 외부에서 오는 15회선을 구내에 연결시키면 되도록 하였다.
이상의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경성부 청사의 구조는 외부에서 내면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최신식 건축 방식을 도입하여 신축된 관아건물이었다.
경성부청사의 설계는 총독부의 건축과장인 암정장삼랑(岩井長三郞)과 기사(技師) 세경일(笹慶一)이 담당하였으며, 신(新)청사는 종래의 관아건물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외국의 경우와 같이 부협의회(府協議會)를 개최할 때 사용되는 장소로서 회의장소를 갖추었다. 회의를 진행하는 곳과 방청석과는 구별이 되어있으나 의장석과 각 의원석은 상하의 높이를 두고 설계된 것이 아니라 평면적인 구조로 만들었다. 방청석은 약 2척 높이의 두 계단으로 되어 있으나 방청인의 수가 많을 경우를 예측하여 전면보다는 후면을 높이한 산비탈형식으로 되어있다. 의석(議席)은 고정이 된 취부식(取付式)이 아니고 이동식으로서 탁자를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둘째, 외벽의 도료(塗料)에 특색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인조석도(人造石塗)의 형식이나 실제로는 인조석과 전혀 별도의 성질을 지닌 「리싱」도(塗)를 사용했다. 리싱도(塗)는 흡수량이 많은 것이 단점이기는 하지만 한기(寒氣)에 잘 견디는 것이 특징이다. 이 리싱도의 주성분은 진사토(眞砂土)이고 이를 사용하면 외관이 부드럽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성부 청사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셋째, 공중식당의 설치에 있다. 한국의 관아 건물에 있어 공중식당이 설치된 것은 경성부 청사가 효시이다. 항상 개방되어 언제든지 이용이 가능했다.
넷째, 전화의 자동교환대 설치이다. 총독부 청사에도 공전식(共電式)전화교환대를 설치했으나 본(本)청사에는 자동식교환대를 설치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한 것은 되었다.
다섯째, 경성부 청사 앞의 광장에 그 특색이 있다. 광장은 남대문통에서 태평통을 통하고 광화문통에 이르도록 접속된 것이며 장곡천통(長谷川通)과도 연락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 광장을 부민(府民)들의 집합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광장의 중심부에는 분수탑을 설치하여 장식적인 기념분수로 주위에 화단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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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부 옛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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