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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당시 한성의 경찰관서조직은 종전의 서부경찰서(西部警察署) 용산분서(龍山分署) 아래에 수원경찰서로부터 편입시켰던 영등포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를 다시 수원경찰서로 돌려 보냄에 따라 중부 · 동부 · 남부 · 서부 · 북부의 5서(署)와 동현분서(銅峴分署) · 용산분서의 2분서(分署) 및 한호(漢湖) · 마포(麻浦) · 서호(西湖)의 3순사주재소 제도를 채택하였다. [註31] 이듬해 1월 3순사주재소를 거느린 용산분서가 경찰서로 승격함에 따라 모두 6서 1분서 3순사주재소의 경찰 행정기구가 있게 되었다.
1910년 6월 20일 칙령(勅令) 제296호에 의해 통감부경찰관서관제(官制)가 제정됨에 따라 경성부내의 경찰서는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의 직할로 하여 남북양서(南北兩署)와 용산경찰서 및 동현(銅峴) · 동대문(東大門) · 수문동(水門洞) · 서대문(西大門)의 4분서(分署)와 76개소(所)의 파출소 · 주재소가 설치되었다. 이때 종래에 있던 중부경찰서는 북부경찰서로 개칭되고 동시에 남대문분서를 폐지하여 교동 소재의 북부서(北部署) 관할로 하고, 동대문분서는 본정(本町)의 남부경찰서 소속으로 하였다. 동년(同年) 8월 5일 경무부(警務部) 및 경찰서 명칭 · 위치 및 관할구역을 조정함에 따라 황궁경찰서가 창덕궁내에 새로 설치되어 북부서 내의 창덕궁지역과 개정 전의 서부서(西部署) 관할 내의 덕수궁지역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註32]
당시 북부서의 청사는 탑골공원 동쪽 근처에 신축계획 중 [註33]이었으므로 일시 돈화문 밖 친위대 건물 내(內)에 가사무소(假事務所)를 설치하고 경찰업무를 개시하였다. 동년 9월 북부경찰서가 신축되어 낙성식을 끝마친 후 이전하였으나 장소가 협소하여 다시 종로 2정목(丁目)에 있는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구(舊) 한미전기회사(韓美電氣會社)]의 서양식 벽돌 2층 건물을 차가(借家) 계약하여 회사측에 수선토록 요청하였다. 1915년 9월 새청사로 옮겨진 북부경찰서는 종로5정목에 동대문분서를 설치하였다.
종로경찰서는 북부경찰서 종로순사파출소가 1915년 6월에 승격된 것으로 1923년 1월 김상옥(金相玉) 의사(義士)의 투탄(投彈)으로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곧 보수되었다. 동서(同署)는 장소와 경찰사무의 보안관계 등을 이유로 하여 1929년 8월 구(舊) 한성재판소 청사로 이전하였다.
종로경찰서가 처음 사용하였던 한미전기회사의 건물은 1900년 초에 준공되었으나 1902년 1월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동년(同年) 7월에 개건(改建)되었다. [註34] 1919년 이후에 일본인에게 매수된 동(同) 건물은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의 사옥(社屋)이 되었다. 그 이후 경성전기주식회사(京城電氣株式會社)로 명칭 변경이 있게 되자 동(同) 회사의 일부 건물로 사용되어 오다가 1915년 종로경찰서에 매수되었다. 본(本) 건물은 벽돌 2층으로 전면폭(前面幅)이 약 12간(間), 측면이 약 8간으로 전체 면적은 198평(坪) 정도였다. 건물의 형식은 [註35] 벽돌에 석재를 섞어서 사용한 것으로 현관부분의 포오치와 2층 발코니 부분 등에는 모두 석조(石造)로서 구성하였는데 발코니 부분은 아이오닉 오오더(Ionic-order)로 장식되었고 그 위에 다시 원통형의 드럼으로 된 시계탑을 만들고 돔을 얹었다.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에서 매수한 동 건물은 보수되어 벽면 구성의 각 모퉁이에 귓돌로써 쌓았다. 1층 창은 아아치로 하되 2층 창은 페디먼트(Pediment)로 하였으며 창틀은 모두 석재(石材)로 사용하였다. 지붕은 정부(頂部)에 전망대 풍(風)의 난간을 둘러쌓았다.
그러나 보다 효율적으로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확대된 경찰 기구는 1905년 1월 고문정치(顧問政治)의 실시에 따라 동경경시청(東京警視廳) 제1부장경시(部長警視) 환산(丸山)이 한국의 경무고문(警務顧問)으로 파견되어 일본인 경부(警部)를 시내 각 경찰서에 배치하게 되었다.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 고문경찰제도는 더욱 확장되어 1906년 6월 서울 시내의 각 경찰서에 일본인 경시 1명, 경부(警部) 7명, 순사(巡査) 약간명을 두어 전국 26개소의 경무분서(警務分署)와 122개소의 분견소(分遣所) · 분파소(分派所)에서 대한(對韓)경찰사무를 관장하였다. 확장된 경찰기구의 편성에 따라 새로이 개설된 종로경찰서가 장소 등의 문제로 이전한 구 한성재판소 청사는 평리원(平理院) 건물로서 1908년 6월에 착공하여 동년(同年) 11월에 준공되었다. 벽돌 2층의 연건평 352평의 건물로서 벽돌에 회색칠을 하여 석조(石造)모양을 나타냈다. [註37] 위치는 현 제일은행 본점 북쪽 지점이고 1929년부터 동(同) 경찰서 청사로 사용되어 오다가 6 · 25전쟁때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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