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에서 일제 전반기까지에는 오늘날의 개념에 의한 도시계획이라는 것은 없었으며 시가지 정리(市街地整理)라는 이름으로 도로의 확장 · 정비를 시도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대한제국정부 하에서 경성부의 시가지 정리를 최초로 시작한 것은 1907년 4월경부터이며 남대문옆의 도로개설과 좌우성벽의 철거공사였다. 그때까지는 폭 3간의 성문만이 있어 그것을 통해 성곽 남북이 소통되는 실정이었다. 숭례문(남대문)은 원래가 인마(人馬)교통량이 폭주했는데 그 좁은 누문(樓門) 안에 1898년 10월부터 전차(電車)가 통하고 광무(光武) 9년(1905)초부터는 경부철도(京釜鐵道)가 개통되어 많은 철도승객까지 이 문을 통하여 왕래하게 되었으니 누문을 헐어 버리거나 누문은 그대로 세워둔 채 양쪽 성벽을 헐고 그 자리를 도로로 개설 확장하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서울성곽은 축조된지 511년만인 1907년부터 헐려지기 시작했으며 이로부터 일본인들은 시가지계획이라는 미명하(美名下)에 누문과 성벽을 마구 헐어버리고 말았다. [註1] 서대문의 동서(東西) 양측에 각각 8간(間)씩의 신도(新道)를 개설하고 이 도로를 경성정거장까지 연장하는 공사와 동현통(銅峴通)(구리개 즉 오늘날의 을지로)의 확장(연장 464칸 폭 12칸), 주자동에서 남학동간(間)(연장 180간 폭 5간), 광희문에서 왕십리까지(연장 593간 유효폭원(有效幅員) 4칸)의 확장 개수를 비롯하여 많은 소구간(小區間)의 개수(改修)도 대한제국시대에 이루어졌다. [註2] 1910년 8월에 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한 일본인들은 1912년 10월에 총독부 훈령을 발하여 주요 시가지의 시구개정(市區改正) 또는 확장을 하고자 할 때에는 그 계획설명서 및 도면을 첨부하여 미리 인가를 받도록 지시하였다. [註3] 이어 동년(同年) 11월 총독부고시 제78호로서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노선(京城市區改修豫定計劃路線)이라는 것을 발하였는데 이것이 1930년대 중반까지 서울의 가로계획의 전부였고 모든 가로 조성은 이 고시의 개정 즉 추가변경으로 이루어졌다. 이 계획노선은 당초에는 총 29개노선이었는데 그후 네차례의 개정을 통하여 [註4] 다음과 같은 47개 노선으로 변경 확대되었다. [註5] (지역명칭은 모두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경성시구개수예정노선표(京城市區改修豫定路線表) 제1 광화문에서 황토현광장(黃土峴廣場)(현 세종로 네거리)에 이르는 노선 제2 남대문에서 남대문정거장에 이르는 노선. 폭원(幅員) 19간(間) 제3 황토현광장에서 대한문(大漢門) 앞 광장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노선, 폭원(幅員) 15간 제4 동대문에서 종로를 거쳐 경희궁 앞까지 이르는 노선. 폭원 15칸 제5 남대문에서 한국은행 앞을 거쳐 종로에 이르는 노선. 폭원 15칸 제6 광화문앞에서 안국동광장을 거쳐 돈화문통을 횡단하여 총독부의원(總督府醫院)(현 서울대학 부속병원)의 남부를 관통하여 이화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7 종로에서 송현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5∼12칸 제8 대한문 앞 광장에서 을지로를 관통하여 광희문밖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9 돈화문 앞에서 을지로광장을 거쳐 충무로 4가를 횡단하여 필동까지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10 이화동에서 남행(南行)하여 을지로를 횡단하고 충무로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11 창경궁 앞에서 서울대학병원통을 직통하여 충무로 5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칸 제12 혜화문에서 이화동까지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13 한국은행 앞 광장에서 충무로 남부(南部)를 직통하여 쌍문동에 이르는 노선(현 퇴계로의 종전 도로). 폭원 12칸 제14 대한문 앞 광장에서 한국은행앞 광장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칸 제15 경희궁 앞(현 신문로)에서 서대문을 거쳐 독립문통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칸 제16 경복궁 앞 광장에서 내자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17 북문 부근 청운동에서 서소문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18 대한문 앞 광장에서 서대문통을 거쳐 독립문통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19 교북동에서 의주로를 거쳐 마포가도(街道)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20 남대문에서 마포를 향하여 철도 건널목을 거쳐 봉래동 2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제21 마포가도(麻浦街道)에서 현 서울 서부역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22 남대문에서 남창동을 거쳐 후암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6칸 제23 삭제 제24 안국동광장에서 북부 화개동(花開洞)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25 안국동광장에서 사선(斜線)으로 탑골공원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26 삭제 제27 탑골공원 앞 네거리에서 을지로를 거쳐 저동 1가를 거쳐 충무로 3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28 삭제 제29 창경궁 앞에서 혜화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8∼4칸 제30 을지로 2가에서 저동 1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31 동대문에서 숭인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칸 제32 내자동에서 사직동을 거쳐 의주로 교북동(독립문)에 이르는 노선. 폭원 8∼4칸 제33 현 서울역전에서 갈월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5칸 제34 봉래동 2가에서 청파동 3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10∼6칸 제35 봉래동 2가에서 아현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36 경복궁 앞 광장에서 사선으로 서소문(경희궁 앞)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37 경복궁앞 광장에서 사선으로 종로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38 충정로 2가에서 마포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6칸 제39 을지로 2가에서 남산동 1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40 이화동에서 동대문안 을지로를 거쳐 쌍문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41 봉래동 2가에서 신공덕동에 이르는 노선(현 만리로의 전신). 폭원 8칸 제42 갈월동에서 한강로에 이르는 노선. 폭원 15칸 제43 갈월동에서 원효로 3가를 거쳐 마포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6칸 제44 원효로 3가에서 마포가로에 이르는 노선. 폭원 6칸 제45 원효로 3가에서 이촌동을 거쳐 한강로 철도건널목에 이르는 노선. 폭원 6칸 제46 동자동에서 청파동 1가에 이르는 노선. 폭원 8칸 제47 적선동에서 궁정동을 거쳐 청운동에 이르는 노선. 폭원 12칸 멀티미디어자료    1907년 무렵의 남대문
   1910년초의 남대문로
   1910년초의 종로6가 부근
   1910년말의 중학동 부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