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통제(建築統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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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에 1935년까지 도시계획의 2대근간(根幹)을 이룬 것은 앞에서 고찰한 가로계획과 건축통제(建築統制)였다. 그 내용을 오늘날의 시점(視點)에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고 또 통제기능이 전적으로 경찰기능이었다는 점에서도 기이(奇異)한 느낌을 주게 한다.
즉 조선총독부는 1913년 2월에 총독부령 제11호로 「시가지건축취체규칙(市街地建築取締規則)」을 발포하고 있는데 이 규칙은 바로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건폐율(建蔽率)(2조 1항), 건축선(建築線)(2조 2항), 건축물의 재료, 부대설비(附帶設備), 미관(美觀), 재해방지(災害防止) 등을 규제하는 한편 오늘날의 관념에서의 방화지구(地區) · 미관지구(美觀地區)(제4조), 준공업지역(準工業地域)(제6조) 등을 규정함으로써 도시건축물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요구를 충족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는 경성부내에서 방화지구 · 미관지구에 해당하는 제4조의 지역을 우선 경무총감고시(警務總監告示) 제3호로서 1913년에 지정하고 이어 1914년 5월 경무총감고시 제1호로서 「경기도(京畿道) 경성부(京城府) 일원(一圓)으로 한다. 다만 현저동 · 도화동 · 마포동 · 청암동 · 이촌동을 제외한다」라고 지정하였다. [註6] 또 준공업지역에 해당하는 제6조의 지역범위에 관하여는 역시 1913년에 총독부고시 제220호로 지정하였다가 1914년 5월 총독부고시 제89호로서

「① 성벽(城壁)밖의 지역, 다만 서대문정거장(西大門停車場)에서 한강철교에 이르는 철도차선(鐵道車線) 이동(以東)의 지역을 제외함.
② 성벽 내 혜화동 · 동숭동 · 이화동 · 충신동 · 종로 6가 · 을지로 6가와 7가, 다만 을지로 6가와 7가 중 전차로(電車路) 이남의 지역은 제외한다. 」

라고 지정했다. [註7] 즉 당시 공장건설이 허용된 지역은 오늘날의 서울역을 중심하여 경부선 · 경의선 철도의 서쪽 지역 일대와 종로 · 을지로의 6 · 7가와 혜화동 · 동숭동 · 이화동 · 충신동 등지였으며 그 중 을지로 6 · 7가의 전차선로 이남은 일본인들의 가옥이 신축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이 지역은 공장입지(工場立地)가 억제된 것이다.

멀티미디어자료

  1920년대말의 동교동
   1930년대초의 옥인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