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가지계획령(朝鮮市街地計劃令) 과 준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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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의 도시계획안은 성안(成案)이 되었는데도 준거법령(準據法令)이 없어 시행에 옮겨보지도 못하고 사안(死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계획안을 성안(成案)할 당시의 총독부 내무국(內務局) 토목과에서는 도시계획령 또는 시가지계획령(市街地計劃令)의 제정을 서두는 듯하였다.
일본에서 도시계획법과 시가지건축물법(市街地建築物法)이 제정 시행된 것은 1919년 4월 4일 일본법률 제36 · 37호이었는데 이 두 개의 법내용(法內容)을 혼합해서 조선총독부가 조선시가지계획령을 발포한 것은 1934년 6월 20일 제령(制令) 제18호이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도시계획위원회에 관한 규정을 제외하고는 일본의 도시계획법(都市計劃法)과 시가지건축물법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시가지계획령이 발포된 다음 해에 발행된 잡지『조선공론(朝鮮公論)』1935년 11월호는 「국제도시(國際都市) 경성부(京城府)」라는 제하(題下)에 경성부 도시계획의 성안(成案)준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사(記事)를 게재하였다.

「경성부의 도시계획은 1934년 6월의 제령(制令) 제18호로서 조선시가지계획령이 발포되고 이어서 건축취체를 제외한 해령(該令)시행규칙이 동년 7월 총독부령 제78호로서 공포된 것이다. 이제 처음으로 조선의 각 도시의 시가지계획이 법령에 근거를 두고 구체적으로 입안(立案)되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경성부에서는 그의 필요를 통감하고 일찍부터 그 필요성이 창도(唱導)되어 1921년(대정(大正) 10년), 당시의 수야(水野) 정무총감(政務總監)을 회장으로 하여 관민유식자(官民有識者) 300명을 망라하여 경성도시계획연구회(京城都市計劃硏究會)를 조직하여 구역 · 교통 · 위생 · 보안 · 경제 · 교육 · 공원 · 사회시설 · 제도 · 건축 · 주택 · 재원의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다시 각부문별로 부장과 이사를 두어 각 방면에 걸쳐 상세한 조사연구를 하고 각 방면에 걸친 의견이나 조사를 취전(取纏)하는 당국(當局)에 구진(具陳)하여 계획과 실시를 촉진하게끔 노력해 온 것이다.
또 사계사도(斯界斯道)의 명사를 초빙하여 권위있는 강연(講演)을 공개해서 도시계획에 관한 사고를 수준에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또 경성부에서는 1926년에 임시도시계획조사계(臨時都市計劃調査係)를 두어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수집케 하고 계획안의 작성에 심중(深重)한 고려(考慮)를 가(加)해 오다가 1932년에 이것을 토목과에 귀속시켰으나 1934년에 계획령이 발표되자 이를 다시 갱생(更生)시켜 이제 본격적인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26년 이후 경성부에서는 도시계획에 관한 조사서 · 계획서를 다섯 번이나 작성했고, 이와는 달리 진행된 총독부의 조사와 합쳐져서 시가지계획의 조사가 완료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여러 가지 사업계획의 결정이며 이를 정밀히 조사 · 연구하여 지형도와 기본조사도의 작제(作製)가 급무(急務)라고 한다.
경성부당국은 이 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1935년도 임시도시계획조사비로서 32,900여원을 계상(計上)하여 2개년의 기간으로서 작제(作製)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구역의 결정과 함께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도로와 하수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끔, 필연의 추세인 인구증가에 따라 일어날 상수도, 진개(塵芥)오물처리, 하수 등의 토목사업이 지형의 변경을 초래할 것이니 이 방면에 신중한 고려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중략)……여기에 새로이 적당한 축척(縮尺)(실제로는 3,000분의 1이 가장 편리)의 실측을 하고 기본적 실측도 작제(實測圖作製)가 서둘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 도면은 평면적으로 현상(現狀)을 나타내고, 입체적으로 토지의 기복상태, 고저낙차(高低落差)를 등고선(等高線)에 의하여 표시할 예정이며 따라서 3,000분의 1이면 도로 · 상하수도 등은 본도(本圖)의 사용으로서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일본 각 도시 정비의 기본을 이룬 것이 바로 이것(3천분의 1 도면)이며 경성부는 이의 작제(作製)를 위하여 제1반(班)(동부(東部)) 한지면 · 숭인면 · 뚝도면방면(方面), 제2반(서부(西部)) 용강면 · 연희면방면, 제3반(남부(南部)) 영등포 · 북면방면을 금추(今秋)까지에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註10]

경성부는 1934년부터 7만원의 예산으로 2개년 계속사업으로 행정구역광장 및 시가지계획령 적용구역(適用區域)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고 1936년 4월에 행정구역의 확장과 시가지계획령의 적용을 동시에 보게 되었고 시가지계획을 결정 발표했다. [註11] 계획구역에 관한 사항이 총독부령 제8호로 총독자문기관(總督諮問機關)인 시가지계획위원회(市街地計劃委員會)를 통과한 것은 1936년 2월 14일이며 전체계획이 관계 부(府) · 읍(邑) · 면(面)의 자문(諮問)을 거쳐 총독부 고시 제180호로 고시된 것은 1936년 3월 2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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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에서 내려다 본 경성시가(1920년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