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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구역에 있어 1930년도 계획안보다 26,587,000㎡ 정도가 넓은 135,355,032㎡에 달하였다. 목표년도인 1969년의 계획인구를 110만으로 잡은 이 도시계획이 햇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우선 그 계획구역에 관한 사항이 시가지계획위원회(총독부령 제8호)를 통과한 1936년 2월 14일부터의 일이다. (같은 날의 조선총독부령 제11호는 경성부의 관할구역을 확장하는 것이고 이 때의 확장 예정 행정구역과 계획구역은 일치한다.) 그후 이 계획안은 관계 부(府) · 읍(邑) · 면(面)의 자문을 거쳐 1936년 4월 1일부터 시행할 것을 전제하여 동년(同年) 3월 26일자 총독부고시 제180호로 고시되었다.
이어 1936년 12월 26일 총독부고시 제722호로 가로망(街路網)과 토지구획정리지구(土地區劃整理地區)의 내용이 발표되고, 1939년 9월 18일 총독부고시 제756호로 지역제(地域制)가 확장되었으며, 1940년 3월 12일 총독부고시 제208호로 공원계획이, 1941년 3월 25일 총독부고시 제337호로 풍치지구(風致地區)가 각각 확정 발표되었다. 즉 서울의 당초의 도시계획은 상기(上記)한대로 계획구역 · 가로망 · 토지구획정리 · 지역제(地域制) · 공원 · 풍치지구(風致地區)로 나뉘어 성안(成案) · 검토된 후로 별도로 발표된 것이 특색이다.
계획구역은 대체로 1930년 당시 계획안의 구역범위와 비슷하나 부분별로는 약간씩 범위가 늘어나 경성부일원 186개 정(町) · 동(洞) 전역에다가 3개군(郡)에 걸쳐 1읍(邑) 8개 면(面) 총면적 135,355,032㎡에 달하였다. 계획구역내에 포함되는 부 · 읍 · 면 · 리동은 <표:경성시가지계획구역>과 같다.
당시의 계획당국(경성부 및 총독부 내무국 토목과)은 구역범위의 결정, 특히 계획구역으로 편입되어 있는 읍(邑) · 면부(面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그 구역책정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경성부내의 지형 · 지세를 보면 경성부의 행정구역은 한강과 북한강간에 개재(介在)하며 남산, 인왕산, 북악산 등으로 포위된 성내(城內)의 지역과 이로부터 서남방으로 유입한 한강을 면한 신(新) · 구(舊)용산일대의 지역을 포괄한 것으로 시가(市街)는 성내(城內)에서 점차로 성벽을 넘어서 발전하고 있었다.
경성부지역의 약간 서쪽으로서 남북을 관통하는 경부(京釜), 경의선(京義線)과 경성부의 남쪽으로부터 동쪽을 벗어나 원산으로 향하는 경원선(京元線), 혹은 각종 도로 등으로 부외(府外)로 현저히 발전하고 있어서 이들 지형이 동(東)으로는 청량리부근과 왕십리근방, 남(南)으로는 한강부근과 한강을 넘어 노량진 · 영등포부근에 이르고, 서(西)로는 마포부근으로부터 용산면 일대와 신촌리부근까지, 북(北)으로는 은평면 홍제리부근까지 각지에 중심지를 형성하려는 기세에 있었다.
이 지세를 살펴 보면, 첫째 청량리부근은 경성부의 동쪽에 있으며 경성 오리진선(五里津線)도로(춘천가도(春川街道))에 연하여 경원선의 청량리역이 있다. 여기는 경성부청으로부텨 약 6km를 벗어나 10k㎡에 한(限)한 일대의 평지로서 남으로는 청계천을 격(隔)하여 왕십리에 대(對)하고, 동으로는 중랑천을 격하여 양주군 구리면과 고양군 뚝도면에 대(對)하고, 북변은 언덕이 있으나 표고(標高) 70m이상의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이 지역의 북단을 경원선 1등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또 이 지구의 중앙에는 성북리 부근으로부터 유출되는 정릉천(貞陵川)이 있다.
이 지역내에 포함된 주요리(主要里)는 종암리(鍾岩里), 제기리(祭基里), 용두리(龍頭里), 신설리(新設里) 등으로서 앞으로 동부시가지(東部市街地)의 중심을 이루는데 족하고 주거지역, 상업지역은 일부 공업지역으로써 알맞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앞으로 경성부시가지계획구역이 또 다시 좁은 감이 있을 경우 동쪽 중랑천을 건너서면 중랑천 연안으로부터 망우리령하(忘憂里嶺下)에 연(連)하는 광막한 평지가 있어서 발전의 여지가 있다.
둘째로 왕십리부근을 보면, 이 일대는 경성부의 동남방(東南方)에 개재하고 청계천의 남쪽 경성(京城)∼강릉도로(江陵道路)(이천가도(利川街道))에 연하며 주로 한지면(漢芝面) 신당리(新堂里), 상 · 하왕십리(上 · 下往十里), 행당리(杏堂里) 등을 포함하고 토지는 약간의 기복(起伏)이 있으나 앞으로 주택지역과 상업지역 혹은 일부 경공업지역으로서 상당한 발전이 기대된다.
왕십리지역의 동남 중랑천을 격하여 뚝도가 있어 이곳은 경성부 수도의 수원지(水源地)가 있고 한강에 연한 비옥한 토지로써 채소의 산출(産出)이 많으며 서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지형상 전원도시(田園都市)로서 매우 적합하다.
셋째 한강부근지역은 배후(背後)에 남산을 등지고 남으로는 한강에 임하며 동쪽은 왕십리에 연결되고 서쪽은 용산 육군(陸軍)용지에 접하며 구릉기복(丘陵起伏)이 있어 주택지대로 적당하다.
넷째 노량진방면을 보면 한강의 남안에 위치하나 인도교(人道橋)와 철도선로로서 경성과 연결하고 흑석리, 본동리, 노량진리, 상도리 등의 지역은 한강에 면(面)하며 풍광미려(風光美麗)하여 주택지대를 형성하는데 적합하며 특히 그 동단(東端)의 동작리 등은 산수대조(山水對照)의 묘미가 있으므로 앞으로 수변공원(水邊公園)으로 적호(適好)한 지대이다.
다섯째 영등포방면은 노량진으로부터 연(連)하고 한강, 여의도를 격(隔)하여 용산 마포에 대(對)하고 경성의 서남 8km의 지점에 있다. 또한 안양에 연한 600정보(町步)의 평야를 끼고 경부선과 경인선이 여기서 분기(分岐)되며 서쪽에는 안양천, 북쪽은 한강에 의하여 장래 수운(水運)의 편(便)을 개척하는데 족하며, 여의도에는 한(韓) · 만(滿) · 일(日)을 연결하는 항공로(航空路)의 중앙착륙장이 있다. 경성의 중앙부와 이 지역과는 한강에 의하여 격리되고 있으므로 이 지역에 있는 공장(工場) 때문에 경성의 공기오염은 적을 것이므로 장래 경성의 공장지역으로서 가장 중요한 지위에 있다.
여섯째 마포, 용강 부근의 지역은 경성의 서방에 연결하는 한강 강안(江岸)일대의 토지로써 수운(水運)의 편(便)을 받아 그 대부분은 한강 치수사업(治水事業)에 의하여 홍수침해를 면(免)하고 하역장의 설비도 정비되어 가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강변일대는 대안(對岸) 영등포방면과 같이 한강을 끼고 장래 공장지역 혹은 경공업지역으로서 상당히 기대된다.
일곱째로 연희면 신촌리방면의 지역을 보면 경성의 서쪽에 연결되고 경의선 신촌역 부근으로부터 홍제원천(弘濟院川) 연안에 이르는 지역으로서, 서로는 수색방면의 평야를 전망(展望)하며 북으로는 은평면에 접하고 남방으로는 마포방면과 일부 한강을 격하여 영등포방면이 내다보이는 적호(適好)의 주택지대였다. 그리고 그 일부는 공장지역으로써 이용할 수도 있었다.
끝으로 은평면방면은 경성의 서쪽 구 의주가도(舊義州街道)에 연한 지역으로써 동북은 북한강으로 연결되며 산지가 많으나 홍제리, 세검정 등을 포함해 풍치가 좋으며 공기가 맑아 장래 풍치지구로서 보호를 요(要)하고 또 주택지대로써 적호한 토지였다.
이러한 경성근방의 산하(山河)가 서로 교체하고 평탄지(平坦地)로써 적당히 교통로를 배치하고 상 · 하수도가 많으므로 기타의 제(諸)시설을 구비하는데 있어서는 취미와 실익(實益)을 겸비한 도시로 형성될 수 있어서 향후 30년을 예상하였다. 기술한 바와 같이 지형 지세(地勢)와 더불어 도시발달의 정세를 감안하여 동으로는 중랑천을 한계로 청량리 · 왕십리일대를 흡수하고, 남으로 한강남안(漢江南岸) · 북면의 대부분 · 도림리 · 번대방리의 일부와 구로리를 제외한 영등포읍과 안양천 우단(右端)에 있는 양동면 양화리 및 염창리의 일부를 포괄하고, 서로는 홍제원천을 경계로 하여 용강면 전부와 연희면의 대부분, 북으로는 홍제리로부터 세검정 부근 · 성북리 · 돈암리를 포함한 구역을 경성부의 시가지계획구역으로 하는데 적당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구역책정(區域策定) 이유를 붙여 관계 시가지계획위원회(市街地計劃委員會)의 의결(議決)과 관계 부 · 읍 · 면의 자문을 거친 후 1936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조선총독부고시 제180호를 1936년 3월 26일 발표했다. 이것은 이 땅에 있어서의 도시계획의 효시(嚆矢)였다.
참고로 경성부청(京城府廳)을 중심으로 계획구역내 각 지점까지의 소요시간거리(所要時間距離)(당시의 교통기관이었던 전차(電車) · 자동차 및 보행)를 보면 청량리 방면에 있어서는 가장 먼 이문리가 1시간, 휘경리 · 회기리 등이 50분 이내, 왕십리방면에 있어서는 가장 먼 사근리가 49분, 남산 뒷쪽 한강리가 48분, 북면(北面) 노량진리 40분, 동작리 1시간 5분, 영등포리 49분, 그 남쪽인 도림리가 1시간 20분, 양동면 양화리 1시간 29분, 마포하류 연희면 망원리 1시간 23분, 신촌역 42분, 홍제외리 45분, 세검정 1시간으로 각각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 도림리 · 양화리 · 망원리 등은 그 당시 대부분 도보(徒步)이기 때문에 1시간 20분 내외가 소요되었으나 시가지 계획도로의 신설에 수반하여 승합자동차를 통행시킨다면 1시간 이내에 도달이 가능한 지역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교통연락상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전기한 시가지계획 예정구역은 적당하다는 것을 입증(立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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