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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도교는 처음부터 구(舊)철도교의 고재료(古材料)를 이용했기 때문에 그 폭이 좁아 중앙차도는 4.5m 좌우보도는 각 1.6m에 불과하였으므로 장래에 교통량이 증가하면 불가피하게 바꾸어야 할 응급적 시설이었다. [註7] 그리고 그 시기는 겨우 10여년만에 도래(到來)한 것이다. 이 좁은 교량을 바꾸어 달아야 할 첫째 원인은 노량진 · 영등포 등 남경성(南京城) 일대의 발전이었고, 둘째는 자동차의 급격한 보급이었다.
1934년 8월에 착공한 신교(新敎) 가설공사는 공사비 2,158,000여원(구교(舊橋) 철거비 포함)을 들여 2년여의 공사기간 끝에 1936년 10월 23일 다시 성대한 준공식을 올렸다. 이 교량은 전장(全長) 1,005m 중지도(中之島) 164m 포함), 교폭(橋幅)(유효폭원) 19m 99cm였으며 중앙에 복선(複線)의 전차궤도가 통하고 좌우 양측에 각각 차도와 인도를 설치하여 규격이 완비된 교량이었다. 1937년에 경기도가 편찬 · 발행한 『경성지방(京城地方)の명승사적(名勝史蹟)』이라는 책자는 명승사적의 첫 장에 한강대교를 소개하여
「1등도로 경성∼부산선의 경성부 이촌정(二村町)에서 한강 대안(對岸) 본동정(本洞町)에 걸쳐서 가설한 대교이다. 이 근처에서 구용산강안에의 강면(江面)은 봄 · 여름 · 가을철의 투망(投網) · 낚시 · 주유(舟遊)에 적합하고 특히 인도교 아랫목은 은어(銀魚)처럼 경쾌한 무수(無數)의 보트가 난무(亂舞)하는 터전이 되고 겨울철은 호쾌하기 짝이 없는 스케이트장이 된다……(중략)……교량의 중앙 중지도(中之島)는 녹지대를 이루어 산책자의 휴식에 편하고 한 여름 염서(炎暑)의 철에는 전교(全橋)의 전식(電飾)이 강면(江面)에 비추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성인사(京城人士)의 절호(絶好)한 납량지(納凉地)이다. 」
라고 자랑하고 있다. [註8]
멀티미디어자료
   
한강인도교 개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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