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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광진(廣津))는 옛부터 서울에서 충주를 거쳐 동래로, 또는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에 있는 유명한 도선장(渡船場)이었고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발동기선(發動機船)으로 나룻배를 끌어 주므로써 화물차나 버스같은 것도 건네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홍수가 나면 수일간 교통이 두절되어 그 불편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1930년대를 전후해서 부터는 교통량이 격증하여 하루에 도강(渡江)하는 자동차 · 우차 · 손수레 등이 수백대에 달하게 되었으므로 경기도가 이 지점에 다리를 놓을 계획을 세웠다. 이 당시에 이곳은 아직 경기도 고양군과 광주군의 경계였고 경성부역(京城府域)으로부터는 아득하고 한적한 교외의 일부였던 것이다. [註9]
경기도가 총독부의 보조와 지방관민의 기부를 받아 843,000원의 공사비로 교량공사에 착수한 것은 1934년 8월이며 2년여의 공기(工期) 끝에 1936년 10월에 이의 준공을 보게 되었다. (우연히도 이 교량의 착공 · 준공시기는 한강인도교 개축 때의 착공 · 준공시기와 동일하다. 즉, 이 다리는 한강인도교와의 평행공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개축 전의 구 한강인도교의 재료는 그 태반이 다른 곳에 이설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註10] 구한강인도교의 재료가 철거되어 광진교의 재료 일부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강한 추측이 되기는 하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광진교는 전장 1,037m, 교폭 9m 90cm로서 그 길이에 있어서는 한강인도교보다 길고 그 당시 전조선에서 두번째로 긴 다리였다고 한다.
강의 우안(右岸)은 광장리로서 녹수(綠樹)에 덮인 구릉을 등지고, 좌안(左岸)은 멀리 남한산의 웅자(雄姿)를 바라는 넓은 강면(江面)에 범선(帆船)이 점점이 뜬 풍정(風情) 등, 사변(四邊)의 조망(眺望)이 절가(折佳)한 곳이다. [註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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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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