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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도교(단선(單線))는 총 4년여에 걸친 대공사 끝에 1900년 7월에 준공되었다. 그런데 이 한강철도교가 준공되어 경인선이 개통되고 이어 1905년에 경부선이 부설되자마자 바로 개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 처음 공사를 실시할 때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강항(鋼桁) 강도면(强度面)에서는 중량(重量)기관차의 통행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으며 경인선과 경부선이 겹쳤기 때문에 수송밀도(輸送密度)가 폭주하여 단선으로서는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구 교랑의 상류에 제2교량을 가설함과 아울러 앞뒤 부분의 복선(複線)토목공사도 시행할 계획을 수립하고 1911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개량비 396,000원, 복선공사건설비 902,000원을 요구하였다. 이 공사는 1911년 7월에 착공하여 압록강 가교 때 사용한 잠수함침강식(潛水函沈降式)을 채용, 1912년 9월에 교량 전후부분의 복선토목공사와 동시에 준공하였다. 구강항(舊鋼桁)을 철거하고 교각 일부도 적직(積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구 한강교량의 개축공사는 1913년에 실시되어 강도문제(强度問題)는 해결을 보았다. 그후 한강철도교는 1925년의 대홍수로 본교량과 피일교간(避溢橋間)의 축제(築堤) 전부가 유실되고 탁류(濁流)는 강항(鋼桁)의 하부 2척(60cm)까지를 씻어내리는 상황에 놓여 졌으므로 이의 보전을 기하기 위하여 종래의 축제를 피일교(避溢橋)로 바꾸는 한편 기설(旣設)교량의 강항을 3척(90cm)정도 높였으며 이에 따라 양대안(兩對岸)의 지면도 그 만큼 높이는 공사를 실시하였다. [註12] 지금 한강에 가설되어 있는 철도교량은 모두가 3개이며 당초(1896∼1900)에 가설한 것이 중간의 것이고 1911∼1912년에 가설한 것이 상류(한강인도교 근처) 쪽의 것인데 나머지 한개, 하류쪽의 교량은 1931년의 만주사변 후, 경부선의 수송량이 급증하고 일(日) · 한(韓) · 만(滿) 연락시간의 단축 등이 요구되는데 따라 1940년대에 가설한 교량이며 이것은 당시 일본이 직면한 자재난 등의 이유로 1944년에야 겨우 완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교량의 건설에 관한 것은 몇몇 관계자의 구전(口傳)정도가 전할 뿐이고 기록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이것은 1937년의 중일전쟁이후의 모든 자료와 기록을 기밀취급하여 봉쇄해 버린채 광복을 맞이한 조선총독부의 방침에 따른 때문이며 철도건설 당국에 의한 이 당시의 기록 재정립이 요청될 뿐이다. 멀티미디어자료    개축된 한강철교
   유실된 한강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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