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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도경영권을 양수(讓受)한 경성부는 1945년 광복 당시까지 3차에 걸쳐 수도시설의 확장을 거듭하였는데 이는 초기의 시설규모가 12,500㎥에 불과한 소규모였기도 하지만 계속적인 부세(府勢)의 발전과 이에 상응하는 인구의 증가에 따라 계속적으로 급수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경성부가 1937년에 펴낸『경성부상수도개요(京城府上水道槪要)』에 의하여 1910∼1936년까지 26년간의 상수도시설확장계획을 살펴보기로 한다.
① 제1기 확장(1919∼1922)
1919년에 이르러 부세(府勢)의 신장과 인구의 증가에 따라 급수수요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고 이에 조선총독부는 1,056,734원을 투입하여 1922년까지 4년간에 걸쳐 경기도 관할이었던 노량진수원지의 설비를 배(倍)로 확장하고 한강에 송수관(送水管)을 가설, 경성부에 급수케 함으로써 급수량 부족문제를 완화하게 되었는데 그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예정 1일 1인 평균급수량 : 111ℓ
○ 예정 총급수량 : 21,338㎥
○ 계획급수인구 :192,259명
② 제2기 확장계획(1929.1∼1933.10)
제1기 확장계획의 시행으로 급수량 부족문제가 다소 완화되었으나 인구의 증가와 위생적 생활의 요구에 따라 급수수요도 계속 증가, 다시 급수량 부족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경성부는 제2차로 부비(府費) 123,441원을 들여 1928년부터 1931년까지 4년간에 걸쳐 독도수원지의 확장공사를 시행하는 한편, 계속하여 수원지개량공사와 보수공사를 시행하고, 취수(取水) 및 송수능력의 증가를 위한 취수구(取水口) 신설공사와 배수관 증설공사 등을 시행하는 등 급수의 원활을 도모하였는데 그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예정 1일 1인 평균급수량 : 111ℓ
○ 예정 총급수량 : 36,300㎥
○ 계획급수인구 : 327,000명
③ 제3기 확장계획(1936∼1945)
앞에서 제1, 2기 상수도확장계획의 시행이 있었음을 기술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응급대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꾸준한 부세(府勢)의 신장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1936년 인접읍면의 편입에 의해 부역(府域)이 약 4배로 확장되고 인구 또한 640,000명으로 증가되어서는 종래와 같은 응급책으로서는 도저히 급수수요에 당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에 이르자 부(府)에서는 장기적 안목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 2년간에 걸쳐 확장계획을 위한 제반 기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1962년의 인구를 약 107만명으로 추정(推定)하고 1945년의 추정인구를 762,000명, 급수보급율 61%, 급수능력은 기설(旣設) 36,000㎥을 합쳐 1일 72,000㎥를 생산, 하루 1인당 155ℓ씩 465,000명에게 급수할 것을 목표로 하는 제3기 확장계획을 확정시키고 오늘의 구의수원지(九宜水源地) 자리에 공비(工費) 235만원을 책정, 1936년도부터 4년간 계속사업으로 시행하여 1939년에 준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사가 반정도 진행되었을 때 중일전쟁으로 인해 철관 기타 재료가격이 폭등할 뿐 아니라, 철강(鐵鋼)의 통제에 의해 공급이 부진하여 당초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약 100만원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부에서는 부득이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사업비 37만원을 추가 책정, 총공비 272만원으로 공사를 시행키로 하고 부족되는 일부분의 시설은 제2차 확장계획으로 미뤄 시행키로 하였는데 그 계획의 내용은 <표: 제3기 확장계획 기본개요>와 같다.
한편『서울특별시사(서울特別市史)』해방후(解放後) (시정편(市政篇))에 의하면, 제3기 확장공사의 마무리 경위가 소개되고 있는데, 1936년에 착공한 구의수원지 신설공사는 1941년에 제1차 공사가 준공되고 이어 제2차 공사를 1942년에, 제3차 공사를 1944년에 각각 준공하였는데 총공사비는 527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註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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