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수능력(給水能力)의 신장(伸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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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급수보급율(給水普及率)의 신장(伸張)
1, 2, 3기 시설의 확장계획이 수행되면서 급수능력도 크게 신장되었다. 즉, 1908년 서울에 상수도가 창설된 당시에는 1일 총급수량이 12,500㎥이었던 것이 제1기 확장공사에 의해 노량진수원지로부터 지원급수를 받게된 1922년에는 1일 7,800㎥을 지원받아 [註8] 급수능력은 1일 20,300㎥으로 증대되었으며, 제2기 확장공사가 끝난 1934년에는 1일 최대급수계획량은 36,300㎥으로, [註9] 그후 제3기 확장공사가 끝난 1945년에는 상수도생산능력은 1일 95,700㎥으로 [註10] 크게 증대되었다.
급수능력의 증가에 따라 급수보급율도 크게 향상되었다. 즉, 조선총독부가 상수도경영권을 삽택「신디케이트」로부터 매수한 다음 해인 1912년의 급수보급율은 호수대(戶數對) 32%, 인구대(人口對) 32%였던 것이 제1기 확장공사가 끝난 1922년에는 호수대 40%, 인구대 39%로, 제2기 확장공사가 끝난 1934년에는 호수대 55%, 인구대 53%로 신장(伸張)되었다.
그러나 이 보급율은 급수계획구역 내의 인구에 대한 급수인구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역내(市域內) 총인구 중 급수인구는 그보다 떨어진다. 다만 1934년에는 급수보급율보다 총인구에 대한 급수사용인구율이 더 높은 이유는 급수구역을 행정구역 밖까지 확대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표:급수보급율(給水普及率) 신장추세(伸長趨勢)>

② 급수사용자(給水使用者)의 국적별(國籍別) 분포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서울의 인구밀도는 비록 중심부라 할지라도 오늘처럼 밀집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위생사상(衛生思想)의 보급도 낮았으므로 시전역이 상수도에 의한 급수를 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급수능력도 보잘 것이 없었으므로 이를 충족시킬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같은 지역 내에서는 위생사상의 보급수준의 여하에 따라 또는 급수사용 허가청의 처분 여하에 따라 보급상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인 바 몇가지 자료에 의해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1925년에 급수구역내 총호수는 67,530호이고 그 중 한국인이 47,116호, 일본인이 19,442호 기타 외국인이 972호인데 그 중 급수호수는 총 32,085호로 보급율은 47.5%에 해당되며, 이를 국적별로 보면 한국인은 29.0%, 일본인은 89.9%, 기타 외국인 99.9%로 되어 있는바 <표:급수사용자(給水使用者)의 국적별(國籍別) 분포> 역시 위생사상의 보급수준에서 뒤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식민지통치하의 상황을 감안할 때 부족한 급수량을 공급해야 했으므로 아무래도 한국인에 대한 급수허가의 우선순위가 일본인이나 기타 외국인에 비하여 하위로 쳐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다음 1인 1일당 평균급수량은 생산능력의 계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급수인구의 계속적인 증가에 따라 때로는 증가하는가 하면 오히려 감소되기도 했다.
즉, 1912년말 현재 1인 1일평균 배수량은 105ℓ였던 것이 1920년에는 190ℓ로 증가하였으나 1922년에는 제1기 확장공사가 끝난 다음 해이면서도 172ℓ에 머물렀으며 제2기 확장공사가 끝난 다음 해인 1934년에는 120ℓ로 감소되고, 1937년에는 107ℓ로 더 떨어져 급수사정은 1912년말 현재와 별차(別差)없는 상태로 되돌아 갔음을 <표:1인 1일평균급수량 추세>에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