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하수도(下水道) 기원(起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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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육백년사』에서 하수도를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서울에 하수도가 시작된 것이 한일합병 이후부터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언제부터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의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검토되어야 할 것은 하수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하수도의 개념도 사회정세의 변천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뚜렷한 예로 최근에 이르러서는 하수처리장은 물론 유수지배수(遊水池排水)펌프장도 하수도에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註15]
인간의 생활이 도시에 밀집하여 이루어지기 전에는 오수(汚水)로 인하여 하천이 오염될 우려도 없고 분뇨도 농토로 환원(還元)되어 시비(施肥)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것이 하천의 오염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고 그 중 수질오염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하수처리장의 대대적인 건설 운영에 의하지 않으면 안됨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하수도하면 의례히 하수처리장을 포함한 하수의 배제(排除)와 처리를 위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있고 이와 같은 사정에 따라 하수도보급율도 처리구역면적 또는 처리인구를 기준하여 산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수도의 개념에서 가장 오래되고 장래에도 계속하여 유지될 것은 우수(雨水) 또는 오수의 배제를 원활히 하여 시가지 내의 침수를 방지하고 위생적인 생활을 도모케 한다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하수도의 개념을 이상과 같이 정의한다고 할 때 서울의 하수도기원을 언제까지 소급할 수 있을 것인가. 우수배제시설(雨水排除施設)이라는 관점에서는 조선초기 청계천과 욱천 등 개천을 수축(修築)한 것이 오늘의 서울 도심부의 중요한 배수간선(排水幹線)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때 초기의 하수도형태로서 하수도개념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은 1930년에 조선총독부가 발행한『경성도시계획서(京城都市計劃書)』에서도 현재의 청계천과 욱천을 간선하수도로 취급하고 있음을 볼 때 수긍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 하수도의 기원은 조선시대 한양을 우리 나라 왕도(王都)로 건설하면서 청계천과 욱천을 수축한 태종 12년(1412)까지로 소급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